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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세상. 어둠이 내려앉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한 줄기 불빛만 바라보며 산길을 타고 올라간다. 불빛에 의존해 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른다. 아직 해가 제 빛을 온전히 발하지 않고 있지만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아래 세상도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 모습도 가림막이 쳐져 보이지 않는다. 흰 구름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세상과 거리를 두겠다는 듯하다. 구름 사이 산봉우리는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섬을 연상케 한다.
어둠이 물러가며 주위를 둘러싼 고요함도 사라진다. 구름바다 아래 세상의 여러 소리도 들려온다. 멀리 붉음의 원천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운해가 만든 수평선 끝부터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다. 세상을 가린 흰 구름들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거대한 붉은 파도가 넘실대는 듯하다. 서있는 이곳이 뭍인지 물인지 착각에 빠지게 하는 황홀함이다. 마치 절망이 내려앉아 한 줌 희망도 사라진 듯한 어지러운 세상을 환하게 정화하겠다는 듯 붉음이 절정에 달한다.
답답한 세상사에 어깨가 축 처진다. 위로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장엄한 자연에서도 힘을 받을 수 있다. 매일 뜨는 해지만, 일출이 주는 감동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충북 옥천 용암사는 새벽이 오기 전 어둑어둑할 때 찾아야 하는 곳이다. 마애불을 등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운해가 펼쳐진다. 아직 사물이 제 색을 드러내지 않아 산봉우리들만이 검게 보이고 흰 구름바다가 펼쳐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
이때쯤이면 해는 뜨지 않았지만, 사물이 분간될 정도는 된다. 마애불을 등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운해가 펼쳐져 있다. 높은 산을 오른 것도 아닌데,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아직 사물이 제 색을 드러내지 않아 산봉우리들만이 검게 보인다. 여기에 흰 구름바다는 수묵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화선지였다면 ‘여백의 미’가 바로 운해였을 듯싶다.
잠시 숨을 고르면 붉은빛이 대지를 감싼다. 일출이 시작된다. 자연이 만든 한 폭의 수묵화는 수채화로 변한다. 붉은 물감을 푼 듯 구름은 붉게 물들고, 다른 주위의 사물들도 제 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 10분에서 20분이 지나면 태양은 강렬한 빛을 발산한다. 일출의 감동은 가라앉고, 현실로 돌아온다.
충북 옥천 용암사에서는 해뜨기 전 자연이 만든 한 폭의 수묵화가 해가 뜬 후 수채화로 변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태양이 떠오르면 운해가 만든 수평선 끝부터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다. 붉은 물감을 푼 듯 구름은 붉게 물들고, 다른 주위의 사물들도 제 색을 드러낸다. |
절 부근에 용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라고 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용바위를 부숴버렸다고 한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다 용바위에 올라 신라의 멸망을 슬퍼하며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했다는 전설이 있다.
용암사의 마애불. |
운해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마애불은 정성껏 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영험 있는 부처로 알려져 있다. 마의태자가 조성했다고도 하고 마의태자가 떠난 후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태자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도 한다. 세상을 살펴보겠다는 듯 부처의 시선은 들과 마을을 향하고 있다. 사찰의 대웅전, 천불전 등 건축물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사라져 최근 중건됐다.
용암사 쌍삼층석탑. |
옥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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