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보도를 통해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지만 청와대와 검찰은 실체규명이 아닌 문건 유출 문제에만 집중했다. 검찰은 수사 1개월 만에 ‘문건 내용은 허위’라고 결론짓고 비선 실세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오히려 문건 유출 혐의 등으로 사법적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수사가 ‘부실수사’를 넘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키운 ‘범죄적 수사’였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일보는 당시 문건에 언급된 최순실씨 관련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문건의 주된 내용이 정윤회씨 의혹이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문건의 신뢰성, 작성과 보고 전말, 배경 등 정씨 의혹 취재에 집중했다. 최씨에 대한 사실 확인과 추적 취재도 조직적인 방해 등으로 쉽지 않았다. 청와대와 검찰은 그러나 이 문건을 토대로 최씨 관련 의혹을 확인하고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 ‘문고리 3인방’ 등은 조직적으로 관련 사실을 은폐해 화를 키웠다. 이에 특별취재팀은 당시 문건 취재팀의 도움을 받아 정윤회 관련 문건을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또는 농단을 파악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관천 전 경정(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당시 검찰 조사에서 최씨가 비선실세라는 정황이 담긴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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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 밖으로 태극기와 검찰기가 펄럭이고 있다. 검찰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게 “늦어도 16일까진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통보했다. 하상윤 기자 |
당시 보도를 보면 수사 초기 박 전 경정이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 권력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며 권력서열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 전 경정은 발언 경위와 관련, 지난달 31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검사가 보고서 유출 파문으로 정윤회씨나 박지만씨는 더 이상 비선 활동을 못할 것이라고 하기에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는 (비선 실세가) 한 명 더 있다. 실제 권력 컨트롤에서 최순실씨가 1위라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박 전 경정은 당시 수사 중 권력서열 발언은 검찰이 이를 토대로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등을 수사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검찰을 통해 마지막으로 VIP(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이었다. 검찰이 (비선실세를) 알면 예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대목이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문건 유출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한일 전 서울경찰청 경위도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보원과 통화한 녹취록을 담아둔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이 검찰에 압수됐는데, 그 안에는 최순실씨 관련해 수집한 첩보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즉 당시 수사팀이 한 전 경위의 최씨 관련 첩보를 확보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은 최씨를 비롯한 비선의 국정개입 또는 국정농단 가능성을 알 수 있는 핵심 수사 대상자들의 발언과 첩보에도 최씨를 비롯한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나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한 전 경위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당시 내가 수집하고 있던 최순실씨나 승마협회와 관련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때 최씨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특별취재팀=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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