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서 되살린 발효쪽염색
일반인에 알리는 귀중한 시간”
2009년 시작된 무료 시민교실
뮤지컬배우·시인·건축가·감독…
올 한 해 각계인사 200회 수업 “쪽 염색이 또다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농부의 아들인 내가, 미술을 전공한 내가 이 일을 멀리하면 할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문화재가 됐죠.”
지난 22일 전라남도 나주 정관채 염색장 전수교육관. 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인 정관채씨가 쪽 염색의 길에 들어선 과정을 되짚어갔다.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20명이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그는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시민과 만났다. 일생을 바친 자신의 예술을 시민에게 쉽게 풀어놓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2016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특별한 하루’의 하나로 마련됐다.
정 명예교사가 ‘쪽쟁이’가 되기로 결심한 건 1970년대, 미술대학 1학년 때였다. 당시 쪽 염색은 화학 염료에 밀려 사라질 위기였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그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주에서 겨우 쪽 재배에 성공했다. 이후 오랜 도전과 연구 끝에 전통방식의 쪽 염색인 발효쪽 염색을 복원해냈다. 쪽 염색은 어렵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녹색의 쪽잎을 발효시켜 ‘쪽을 잠에서 깨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고되게 작업해도 아주 조금의 염료밖에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얻은 쪽으로 염색하면 천 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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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인 정관채씨가 시민들이 염색한 천들을 선보이고 있다. |
눈을 반짝이며 그의 설명을 듣던 참가자들은 바로 쪽 염색에 도전했다. 정 명예교사가 미리 만들어놓은 쪽물로 스카프 물들이기에 나섰다. 나주에서 생산된 하얀 무명천이 하나씩 손에 들려졌다. 쪽물에 천을 담갔다 빼자 스카프가 하늘과 바닷빛으로 천천히 물들었다. 정 명예교사는 “처음에는 초록색으로 물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와 만나면서 곧 선명한 남색을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이 염색한 스카프를 깨끗한 물에 빨아 널자 푸른색 꽃무늬가 마당 가득 피어났다. 참가자들의 손끝도 쪽빛으로 물들었다. 이날 10살, 8살 자녀와 함께 온 서선미(36)씨는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 때문에 천연염색에 관심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이 프로그램을 알게 돼 참여했다”고 말했다. 일본인 사토 쇼고(58)는 “제 아내가 염색 관련 일을 해서 (쪽빛을) 본 적은 많지만 한번도 해본 적은 없다”며 “그런데 참 간단하고 재미있다”며 미소 지었다.
정 명예교사는 2010년부터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활동하며 쪽 염색을 알리고 있다. 그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전승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며 “제게 특별하고 소중한 하루인데, 시민들에게도 귀하고 특별한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이런 사업이 다양하게 활성화돼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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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인 정관채씨가 지난 22일 전라남도 나주 정관채 염색장 전수교육관에서 일일 문화예술 명예교사로서 시민들과 쪽 염색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올해는 프로그램 유형이 크게 4가지로 분류돼 강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직장인·청소년 대상의 특화 프로그램, 전통문화의 이해와 문화정체성 확립을 위한 전통 특화 프로그램, 주요 도시의 문화거점공간에서 진행되는 문화거점 프로그램, 명예교사들의 창작공간에서 진행되는 창작공간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연말까지 남은 122회를 포함해 올해 총 200회가 진행된다. 지난해보다 전체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참여 명예교사로는 뮤지컬 배우 남경주·최정원, 안무가 안은미, 발레무용가 이원국, 시인 이해인 수녀, 영화감독 이명세, 영화배우 황석정, 건축가 김원, 해금연주자 꽃별,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 등이 활동한다.
올해 명예교사를 한 안무가 안은미는 “큰 무대나 강연장이 아닌 공간에서 시민들을 가까이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회가 된다. 시민들의 눈빛, 몸짓, 그리고 그들이 자유롭게 추는 춤을 보면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얻는다”며 “명예교사 프로그램은 예술가로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삶을 만나 영감을 받을 수 있어 내게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명예교사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특별한 하루’를 검색해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프로그램별로 선착순 마감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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