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2cm,서울미술관)
일반인들은 도석화로 기복과 장수를 빌었다. 현충사에 12폭 병풍 대작 ‘충무공해전도’를 남긴 금추 이남호(1908∼2001)의 도석화는 소장자의 스토리가 있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소장자는 서울미술관의 소유주이자 유니온약품그룹 안병광 회장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던 시절 그는 20만원을 주고 금추 석화도를 구입했다. 당시 그의 월급은 23만7000원이었다. 30년 전의 일이다. 거의 한 달치 월급과 그림을 맞바꾼 셈이다. 그림에 빨려들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몇날 며칠 흥분돼 그림을 이리 보고 저리 살피고, 심지어 이불 속에 안고 자고 싶은 것이 수집가들의 심정이다. 자다가도 깨어나 다시 보고 흐뭇해하는 모습은 뭐를 줘도 살 수 없는 기쁨이다.
안 회장은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 한 점을 온전히 가지려 한 달 월급을 몽땅 내주는 일, 그 돈의 기회비용이 그 어떤 투자와 금전적 이득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림을 가지는 일은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는 일이며 동시에 인생의 아름다움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은 그림이 사람과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빛나는 동력이란 얘기다. 외판원에서 미술관 소유주로의 여정이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곧 돈이었던 영업사원 시절 월급을 털어 어렵게 산 그의 첫 그림은 그에게 시간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지워지고 또 지워져도 계속 그려 나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라고, 인생 자체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면 연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작’에 이르는 지름길이 아니겠느냐고.
어쩌면 중요한 것은 희망 없었던 어제나 경험 안 한 내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안 회장은 말했다. 생을 빛으로 물들일 단 한순간은 붓을 들고 몰두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라고. 혼신의 붓질로 이룬 그림 한 점이 주는 미덕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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