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때쯤 서울 연세대학교를 찾았습니다. 제569돌 한글날을 앞두고 열린 한글 백일장에서 외국인 학생 2500여명이 실력을 겨뤘죠. ‘문’과 ‘처음’을 놓고 시, 수필 부문에서 경쟁했는데요.
그들에게 한글 백일장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오기 전부터 이미 드라마와 K-POP으로 한국문화를 접한 터라 한글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죠.
그렇다면 일반 관광객들은 어떨까요? 한국과 한글을 잘 알까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대다수가 들르는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에게 한글 백일장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오기 전부터 이미 드라마와 K-POP으로 한국문화를 접한 터라 한글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죠.
그렇다면 일반 관광객들은 어떨까요? 한국과 한글을 잘 알까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대다수가 들르는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아~ 물론이죠. 조금 압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온 앨리는“한글과 한국에 관해 아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한글도 조금 알고 세종대왕도 약간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친구의 초대로 한국행을 준비했다고 했죠. 무려 6개월 전부터요.
앨리는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이 글을 읽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느냐”며 “그래서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웃었습니다. 굉장히 뿌듯해하는 표정이었죠. 그는 “한글은 배우기 매우 쉬운 것 같다”며 “영문표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알고 있는 한글을 써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앨리가 아는 한글을 조금 써볼 수 있느냐”고 물으며, 수첩과 펜을 내밀었습니다. 당황한 앨리. 과연 그는 무엇을 썼을까요?
“푸하하, 아마 안 될 것 같은데요…. 제가 듣기는 잘 듣거든요. 그래도 한번 해볼까요?”
![]() |
처음에 앨리가 쓴 건 ‘비빔바’였습니다. 뭔가 기억날 듯 말 듯 끙끙대는 앨리에게 저도 모르게 “비읍(ㅂ) 원 모어 타임”이라고 말했는데, “What?” 이라는 답변만….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영어와 한글이 섞인 정체불명의 말을 썼으니. 빨간펜은 제가 써 준 부분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토마스와 루드의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멀리서 한 청년이 다가옵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배낭을 짊어진 게 한국 여행을 단단히 벼른 모습이네요.
청년은 자신의 이름이 ‘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스코틀랜드”라고 답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외국인을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카이, 한글을 좀 아나요? 저 동상이 누군지도 알고요? 한국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나요?”
카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고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한국행이 처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혹시 여기가 지금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GPS가 잘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말이죠.
지도상에서 광장을 가리키고는 “여기쯤 있다”고 했더니 웃으며 카이는 떠나갔습니다. 나중에 스코틀랜드에 돌아갔을 때,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네요. 물론 길 안내해준 사람보다 기자로 기억했으면 좋겠지만, 어떤 거든 괜찮습니다.
![]() |
일본과 말레이시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관광객이 남긴 메시지가 보이네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옆에 세워진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의 ‘한글 사랑해’ 꽃꽂이판을 담아보았습니다. |
세종대왕상 옆에 새겨진 자음과 모음을 일일이 가리키며 외국인들에게 설명해주는 ‘외국인’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채로 앞에 선 외국인 세 명에게 한글을 ‘영어’로 알려주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신은 한글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아는 것 같습니다”라며 “혹시 잠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시간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보는 것처럼 외국인들에게 한글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지갑을 꺼내면서 “나중에라도 원한다면 연락해달라”고 명함을 주더군요.
외국인들을 앞에 놓고 한글을 설명한 외국인. 그는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의 데이비드 메이슨 교수였습니다. 메이슨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으며, 지난 2011년 백두대간 홍보대사로 임명된 인물이었습니다.
![]() |
일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관광객이 남긴 메시지가 보이네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옆에 세워진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의 ‘한글 사랑해’ 꽃꽂이판을 담아보았습니다. |
토마스와 루드 래드메이커스는 올해 서른살입니다. 이들은 독일, 네덜란드에서 왔습니다. 친구라고 하더군요. 유럽 축구강국인 독일과 네덜란드는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2차대전에서부터 유래한 관계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한일전을 치를 때면 느끼는 감정을 독일인과 네덜란드인도 느낀다고 합니다. 토마스와 루드도 양국 축구경기가 있을 때는 침이 튀도록 자기 나라를 응원하겠죠?
루드는 한글이 한자보다 쉬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자는 굉장히 복잡하다”며 “한글은 듣기에는 좀 어려워도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 달’ 정도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데 지장 없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죠.
![]() |
토마스는 소주와 맥주 덕분에 ‘주’를 완벽히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과 ‘물’은 아직 잘 모르는 듯합니다. 글씨를 바로 잡아주니 “오케이”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
![]() |
루드는 ‘댁’을 쓰고 난 뒤 “식당 메뉴판에서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메뉴를 본 것인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더군요. ‘주’는 소주 덕분에 알았다며 자랑스레 말하더니, ‘물’은 조금 전 토마스의 글을 교정해준 것을 기억하고는 얼른 써버렸습니다. |
제570돌 한글날을 앞둔 지난 7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한글에 대체로 친밀감을 드러냈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생김새가 아름답다며 인터뷰 내내 호의적인 반응이었죠. 동상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가족단위 관광객들도 있었는데요. 부디 이들이 나중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한글과 한국을 좀 더 아름답게 기억하기를 바라봅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