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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대악의 대결로 악의 추잡함을 다루는 ‘아수라’는 ‘들개’ 같은 비리 경찰과 악덕 시장, 독종 검사 등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거침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들의 지옥도’를 그린다. |
‘감기’ ‘영어완전정복’ ‘무사’ ‘태양은 없다’ ‘비트’ 등으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의 새영화 ‘아수라’는 악인들만 등장하는 폭력의 먹이사슬이자 악의 생태계를 펼쳐놓은 작품이다.
“간절히 만들어 보고 싶은 영화였다”고 털어놓을 만큼 오랜 시간 벼르고 별러 온 김 감독이 특유의 ‘뚝심’으로, 묵직하면서도 당당하게 그려낸 야심작이다. 자신만의 선굵은 연출과 색채를 스크린 가득 마음대로 풀어놓을 줄 아는 중견 감독의 귀환이 반갑다.

무자비한 악인, 들개 같은 악인, 공권력의 얼굴을 가진 악인, 악에 물들어 가는 악인들이 서로 치열하게 물어뜯는 악인열전이다.
재개발 열풍이 부는 안남시의 박성배(황정민) 시장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증인 납치, 살인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조직폭력배 동원, 부동산 개발 비리 등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암 말기인 아내의 병원비 마련이라는 명분으로 박 시장의 주구 노릇을 하며 궂은일을 도맡는다. 아예 경찰직을 버리고 박 시장의 수행팀장으로 전직하려던 참에 일이 꼬인다. 박 시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증인을 납치·협박한 마약중독자이자 자신의 끄나풀이던 작대기(김원해)의 존재를 알아챈 선배 형사(윤제문)랑 다투다 그만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 김차인(곽도원) 검사와 도창학(정만식) 수사관은 이 사고를 계기로 한 형사의 약점을 파고들며 박 시장의 비리를 입증할 증거를 가져오라고 압박한다.
한 형사는 김 검사와 박 시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다 양쪽 모두 자신의 목을 옥죄어오자 발버둥치며 살길을 모색한다.
한 형사를 대신해 박 시장의 수행팀장이 된 후배 경찰 문선모(주지훈)는 점차 박 시장의 심복으로 변모해가면서 자신을 여전히 ‘꼬마’로 여기는 한 형사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기어오르려 한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누가 더 악한가’를 경쟁하듯 132분의 러닝타임 동안 서로 으르렁대며 ‘악인들의 지옥도’를 완성해 나간다. 성찰이나 반성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가차없이 짓밟는 짐승들만 있을 뿐이다.
캐릭터들이 부딪칠 때 드러나는 긴장과 갈등의 정도가 몹시 드세다. 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 또한 그만큼 강렬하다. ‘개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배우들이 한데 모여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와 이들이 격돌하며 일으키는 화학작용은 그대로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게다가 모두가 악역이다.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배우들 각자가 가진 에너지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액션 장면도 만족스럽다. 특히 빗속 자동차 추격신은 압권이다. 할리우드 기술이 부럽지 않을 만큼 높은 성취도를 안겨주며 인물들의 성격까지 담아낸다.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의 파고와 쭉쭉 뻗어나는 전개감 또한 돋보인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합성이나 분할 촬영을 통해 이미 익숙한 액션 장면들을 색다르게 보이도록 공을 들였다. 관습적으로 찍는 방식을 비틀어 관객들이 무의식중에 영화 속 주인공과 맞먹는 고통을 느끼도록 배려했다. 폭력의 세계에 물든 주인공이 그 폭력에 의해 괴멸되는 내용인 만큼 액션의 통쾌함보다는 통렬함을 선사한다.
시사회에서 만난 ‘악의 축’ 박성배 역의 황정민은 “배역에 집중하다 보면 그 인물의 성격이 나도 모르게 표출되기 시작한다”면서 “뉴스를 보면 참고할 분들이 너무도 많아 이번 악역의 롤모델을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처럼, 관객들이 ‘아수라’를 그다지 놀라지 않고 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더 악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독종 검사 역의 곽도원은 “권력을 가진 자가 힘을 잃었을 때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그 모습이 배우에겐 매력적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연출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 변변한 보상도 없이 악당 졸개 노릇만 하다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인생살이란 얼마나 고단할까? ···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매사 악인답게 꿋꿋이 처신해야 하고, 게다가 성질이 포악한 두목을 모시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결국 악인도 연약하고 바보 같은, 한갓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무대에 내던져진, 평생 눈치만 보고 살았지만, 한 번도 정답을 맞히지 못한 채 끝나는 ··· 동정심 없는 세상을 빗대어 영화 ‘아수라’는 ‘핏빛 전쟁터’를 그려낸다. 그 지옥의 풍경 속에서 한 사내가 길을 잃었고, 나는 그 사내의 지친 그림자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2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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