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석 감독은 소탈한 김정호(차승원)를 염두에 두고 주변인물을 배치했다. 지도에 미쳐 집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 순실(남지현)과 조각장이 바우(김인권), 순실을 보살피는 여주댁(신동미)은 “먼 길 가는데 짚신짝이나 넉넉히 챙겨 가라”는 마음으로 지도를 그린다는 김정호의 처지를 짐작하게 하는 설정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자연 풍광을 담은 7분여의 긴 오프닝을 통해 땅에 대한 애정까지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산길, 물길을 가리지 않고 화면에 담아냈다.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스크린에 공개된 백두산 천지의 풍경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대사 하나 없이 이어지는 절경은 CG를 덧칠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군데군데 아쉬움을 남긴다. 서사는 단순하고, 전개는 촘촘하지 못해 지친다.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관객은 캐릭터의 개연성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까. 김정호가 ‘지도쟁이’가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은 너무 짧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가슴이 뛰기 때문에 지도를 그린다”는 대사와는 다르게 영화에는 ‘심쿵’ 포인트가 없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등장하는 ‘삼시세끼’, ‘내비게이션’ 소재의 ‘아재개그’는 웃음을 강요하기만 할 뿐 극으로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하고 만다.
얼개를 꽉 조이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흥선대원군과 안동김씨 일가의 갈등 역시 피로도를 높인다. 지도를 두고 벌어진 권력층의 암투와 딸을 잃어도 대동여지도 목판본은 내놓을 수 없다는 김정호의 고집은 양각과 음각의 구분이 없다. 자연히 전체 그림은 뭉개져 어느 하나 제대로 각인되지 못한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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