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에서 성직자를 성인의 반열로 올리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종교적, 도덕적으로 아주 뛰어난 공적을 남기고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을 이룬 성직자만이 시성(諡聖)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로마 교황청은 오랫동안 시성 과정에서 ‘신앙 촉구관’을 써왔다. 신앙 촉구관은 성인으로 올리려는 후보자의 약점을 캐는 임무를 맡는다. ‘하느님의 변호인(Advocatus Dei)’에 맞서 끝까지 후보자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악마의 변호인’으로 불렸다.
‘악마의 변호인’은 ‘나쁜’ 변호인이 아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막아주고 있다. 수많은 개인이 모이면 집단지성의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집단사고에 광기가 더해지면 공포 그 자체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다수 의견에 맞서 반론을 펴면서 긍정적 역할을 하는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한 이유다.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증거 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은 김앤장 측 변호사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옥시에 불리한 실험 결과를 빼고 유리한 자료만 법원에 냈더라도 형사처벌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악마일지라도 변호인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김앤장은 옥시뿐 아니라 민감한 사건에서 ‘악마의 변호인’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악마의 변호인’이 선의에서 벗어나면 ‘나쁜’ 변호인으로 전락한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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