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연구소 하쿠호토 생활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60~70대 노인 절반이 60대를 "인생의 재출발 시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60.9%는 고령사회의 이미지를 두고 "어둡다'거나 '대체로 어둡다"고 답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고령자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감정은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이런 어둠에는 노후불안, 고독, 병, 금전 문제가 꼽혔다. 또 고령사회의 이미지와는 관계없이 '삶의 존엄한 마감'은 공통된 숙제였다.
이런 가운데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려는 노인들과 이들의 마지막을 돕는 의사의 목소리가 최근 산케이신문을 통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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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양로원에서 10년간 근무한 의사 이시토비 코우죠씨(우). (사진= 특별양호노인홈 캡처) |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한적한 주택가. 이곳에는 조금 특별한 양로원이 있다.
이곳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으로, 의사 이시토비 코우죠씨는 노인들의 품위 있는 죽음을 돕고 있다.
그는 "병에 걸리면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고 의사는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방이 관으로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종착역에 다가선 사람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할 수 없고, 얼마 남지 않은 그 날이 기어코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노인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기 노인들은 품의 있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기계에 의존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많지만, 가족이 있으면 뜻대로 할 수 없다. 가족은 '몸에 온기가 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맥주를 마시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의사, 간호사, 영양사들은 매일 회의에서 환자 개개인의 영양상태를 고민하고 식단 등을 철저히 지킨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60대에 뇌출혈을 일으킨 후 폐렴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PEG튜브' 시술을 받은 76세 노인이 입원했다. (PEG튜브 시술은 위에 구멍을 뚫어 튜브를 구강 밖으로 빼는 수술이다)
노인의 딸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맥주를 탁자 위에 올려뒀다. 튜브 시술로 말할 수 없는 노인은 눈으로만 맥주를 쳐다봤다. 딸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맥주를 마셔도 괜찮을 정도가 되면 드리겠다"며 애써 외면했다.
이를 눈치챈 이시토비씨는 여성과 한참 대화한 후 "맥주를 마시게 하자"는데 동의를 받고 '맥주 처방'을 내렸다. 그러면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구나. 눈치가 없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노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는 큰 위험이 뒤따르는 일로 자칫 질식해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은 맥주를 마시고 3개월 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노인의 딸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맥주를 마신 날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며 "인생의 마지막은 몸이 아닌 마음의 치료가 필요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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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과 대화하는 돌보미직원. 노인들은 "정말 필요한 것은 대화"라고 말했다. |
이시토비씨는 "여기서 환자들의 삶의 방식을 보고 지금을 소중히 하는 것을 배웠다"며 "요양시설은 '무엇을 위해 있는 시설인가, 연명치료가 꼭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노인이 맥주를 마시지 않아 병이 치료되었다면 맥주를 마시게 한 것은 분명 잘못된 판단이지만 예후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며 "맥주는 그의 마지막 소원과도 같은 것이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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