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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에서 한 온두라스 선수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모습. |
◆한국 축구 대표팀에 내려진 ‘침대 축구’ 경계령
14일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에서 한국은 온두라스에 0-1로 졌다. 이날 한국은 온두라스에 슈팅 수 16-6, 점유율 64%-36%로 경기를 압도하고도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석패, 올림픽 메달 도전에 실패했다.
온두라스는 후반 14분 알베르트 엘리스의 골이 터진 뒤 본격적으로 침대축구를 구사했다. 작은 충돌에도 그라운드에 눕는가 하면, 이유 없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사이드라인을 넘어간 공을 다른 곳으로 던져 스로잉 시간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특히 엘리스는 후반 44분 자신이 파울을 범하고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일어서지 않은 채 3∼4분여를 끌어 관중들의 야유를 사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이전에도 그동안 한국은 중동 국가들의 침대축구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알제리의 침대 축구에 2-4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중계를 하고 있던 안정환은 한 알제리 선수가 경기장에 누워 부상을 호소하자 “몹쓸 짓을 하고 있다. 그 정도 부상도 아닌데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란에게 침대 축구의 정수를 맛보며 쓰라린 패배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이란은 후반 14분 선제골을 터뜨린 뒤부터 걸핏하면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시간을 끄는 등 전형적인 침대 축구를 선보였다.
이 밖에 한국은 중동이나 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할 때마다 침대 축구에 대한 대비책을 따로 세워야 할 만큼 악연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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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한국과 온두라스의 경기에서 한국 손흥민이 자신의 슛이 온두라스 골문을 벗어나자 얼굴을 감싸쥐고 아쉬워하고 있다. |
◆원조는 잉글랜드, 중동 국가들이 꽃 피워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식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지만,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외신들이 지목하는 대상은 동일하다. 앞서고 있거나 유리한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눕거나 경기를 지연시키는 등 침대에 있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침대 축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침대 축구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팀들이 있다. 프로 축구 열기가 뜨거운 잉글랜드에서, 약팀들이 강팀을 만났을 때 고의로 시간을 끈 데서 침대 축구가 시작됐다.
이를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1980∼1990년대에 하나의 전술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중동 국가들이 도입했다. 중동의 약체로 분류되는 바레인과 카타르, 쿠웨이트 등이 사용하던 침대 축구는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 국가들까지 퍼지면서 어느덧 중동 축구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특히 이란의 침대 축구는 유럽인에 필적하는 체격 조건까지 더해 더욱 악명 높다. 국민 대부분이 아랍인인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달리, 페르시아인의 국가 이란은 매번 침대 축구에 당하자 이를 도입, 강팀을 만날 때마다 침대 축구를 구사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이란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이 침대 축구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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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위해 방한한 이란 대표팀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침대 축구‘를 둘러싼 엇갈린 시선… 대비법은?
축구계에는 침대 축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침대축구가 ‘안티 풋볼’, 즉 축구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비판이다. 침대 축구로 인해 패배의 쓴맛을 본 국가·클럽의 선수, 코칭스태프, 팬들은 상대편의 비신사적 행위에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침대 축구도 약팀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으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침대 축구 자체가 시간 벌기용으로는 탁월하지만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내줄 경우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온두라스전을 중계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침대축구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FIFA가 침대축구를 제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침대 축구 탓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선수가 고의로 시간을 끄는 행위를 할 경우 심판이 경고를 주거나 곧바로 그라운드 밖으로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전문가들은 침대 축구에 대비하기 위해선 선제골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상대를 압도하는 공격력으로 침대 축구를 구사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 해설위원은 온두라스전이 끝난 후 “한국이 선제골을 내주지 않았다면 상대가 침대축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선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질책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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