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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44〉 땅속의 건축

입력 : 2016-08-11 21:24:53 수정 : 2016-08-11 21: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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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으로 돌아간 듯… 안온한 자연 품은 지하공간 # 자연으로 들어가는 건축

건축이라는 말은 세우고(建) 쌓는다(築)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빈 땅 위에 오똑하게 무언가를 쌓아올리며 그 안에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나 간혹 쌓는(포지티브) 행위가 아니고 파고 들어가는(네가티브) 건축도 있다.

바위를 파고 들어가서 주거를 만들기도 하고, 종교 사원을 만들기도 한다. 또는 땅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기후와 지질 등 자연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그런 건축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한 지질, 즉 모래가 굳어져 생겨난 사암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서안 쪽 페트라 유적이나 터키 서부 지역의 유적, 중국의 둔황 석굴 등이 대표적이다.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라고,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서 관광하는 것이 유명한 지역에 가면 동굴 주거가 있다. 유적만 있는 게 아니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심지어 호텔도 있다. 그래서 들어가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방이 좁으면 땅을 더 파서 늘린다고들 한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이색적인 주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근처에 가면 ‘데린쿠유(Derinkuyu)’라고 아예 지하도시도 있다. 아랍권이다 보니 박해를 피한 그리스도들이 땅밑으로 지하 8층인가 10층까지 파고 내려가서 가축도 키우고 음식도 해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압력 차이를 이용해 공기가 위로 나가게 하는 환기 시스템도 있고, 정화조도 있고, 갖출 건 다 갖추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또 인디아나 존스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보면 시리아에 있는 주거들이 나온다. 땅 아래 공간이 주거로 이용되는 것은 지상이 아주 가혹한 조건일 때 보다 쉽게 추위와 더위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단단하기로는 둘째라면 서운해 할 정도로 경질의 화강암이 많은 곳이라 석굴을 파고 들어가는 사원이나 지중 형식의 주거가 원천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환경이었다. 힘들게 돌을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 흙을 쌓아올리거나 나무를 엮어서 공간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석굴암은 땅속에 있기는 하지만 둔황 석굴처럼 돌을 파고 들어간 공간이 아니다.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올리고 그 위로 흙을 덮은 것이다. 아마 중국의 석굴 양식을 한국으로 이식하며 만들어놓은 듯한데, 그 돌을 다듬은 솜씨가 정교하고 공간감이 아주 뛰어나서 들어가면 천상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경건해진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작이나 끝으로 간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무척 시적이며 종교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고, 죽음이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령 제주도에 있는 삼성혈은 시원을 뜻하고 무덤은 종말을 뜻한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건축가 조병수는 자신의 집을 32㎡ 정도 되는 네모난 상자 모양의 구멍을 파서 땅속에 지었다. 그래서 나무들이 있는 숲 안에 콘크리트로 된 바닥이 보이고 그 밑으로 들어가면 콘크리트 벽체가 있고 네 면으로 나뭇조각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일종의 명상실 같은 방이 있다. 공연이나 낭송회 같은 행사를 할 때는 지면 높이에 만들어진 지붕 위에 사람들이 앉아 마당을 내려다본다. 무척 안온한 풍경이고, 인간은 땅속에 돌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은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터키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동굴 주거. 유적만 있는 게 아니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심지어 호텔도 있다.
# 지하 공간의 다양한 활용

땅속에 집을 짓는 것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땅을 파면서 주변의 흙이 무너져 내리지 말아야 하니까 흙막이 벽을 견고하게 세워야 하고, 습기가 침범하지 말아야 하니까 이중으로 내벽을 세우기 때문이다.

땅속의 집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공기 질의 악화나 자연 재해가 심해지고 기온 등의 문제가 있을 때이다. 그래서 간혹 미래 사회를 그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열악해진 지구의 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땅속으로 들어가 사는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집이 지하에 들어가게 설계하는 경우는, 지상 부분에 지을 수 있는 면적에 한계가 있을 때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는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원한다면 지하 10층까지도 팔 수 있다. 다만 건물이 높이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땅속으로 깊이 들어갈 때도 구조적인 해결이 필요해진다.

혹은 볼륨을 한껏 높여 음악을 듣고 싶은데 주변에 민폐를 끼치니까 지하에 층고를 높게 한 음악실을 만든다든가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럴 때는 지하에도 빛과 바람이 들어갈 수 있게끔 한편에 조금 더 땅을 파서 선큰(sunken) 마당을 만든다. 대지가 평지가 아니고 경사가 살짝 있을 때도 높이 차를 활용해서 지하를 1층처럼 활용할 수 있다.

현대의 건축은 중력에 저항하며 100층을 넘는 초고층 건물들, 한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구조에 대한 실험을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지하를 활용하는 방안을 끝없이 탐구하기도 한다.

현대건축의 예로 가까이는 이대 캠퍼스(ECC) 같은 경우가 있다. ECC 건물을 가보면, 지하를 파서 가운데 큰 광장을 만들면서 양쪽에 각종 편의시설, 심지어 극장 등 수많은 용도를 가진 공간을 넣었다. 만약 그 정도 되는 규모의 캠퍼스를 높이 솟아오르게 지었다면, 이대를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무척 덩어리가 큰 건물이 들어왔을 텐데, 밖에서 보면 광장, 혹은 그저 조경공간처럼만 보인다. 그리고 땅속에 있는 열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지열 시스템을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식의 지하 공간 활용에 대한 실험은 주택부터 대규모 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땅속에 지은 건축 중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고 하면, 역시 안도 다다오의 지중 미술관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일본 세토내해 주변의 섬들을 구경하러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물론 핵심은 예술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였다. 나오시마 예술 프로젝트는 알려진 지 꽤 오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벤치마킹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나오시마 섬에 조성된 미술관과 그 안에 전시된 미술품들은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뒤로 넘어갈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고, 그 작품들을 담은 건물들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는 대단한 건축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그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미술품의 자세가 지나치게 경건하고 자의식이 강해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관람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표하라고 하는 듯했다. 멸균실과 같은 실내에는 멸균복을 입고 사람들을 소독하고 치유하는 듯한 보건소 직원 같은 표정의 관리인들이 우리에게 침묵과 경의를 강요했다. 무척 불편했다. 반면 땅속으로 들어가는 설정과 미술관을 나와 만나는 자연은 좋았다. 나는 미술관을 나오며 해방감을 맛보았다. 마치 미술관이 교묘하게 자연에 대한 예찬을 하는 것 같았다. 

일본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웅크리고 있는 생물의 뱃속 같은, 벽과 바닥의 구별이 없이 모두 허연 내부 공간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손으로 문질러 지워낸 듯 모호함만 가득하다.(큰 사진)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작은 동산을 빙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 두툼하고 각을 살려 포장한 깨끗한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 땅속에서 만난 예술과 건축, 데시마 미술관

그다음 찾아간 곳이 데시마(豊島) 섬이다. 그 이름이 의미하듯 데시마라는 섬은 물이 풍부해서 농사가 잘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어떤 기업이 그곳에 16년간 산업 폐기물을 불법으로 폐기한 것이 드러나며 버려진 땅으로 치부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 유해환경을 개선하고 폐기물을 재처리하여 섬이 빠르게 되살아났다.

그에 더해 인근 섬들에 불어 닥친 예술섬 프로젝트는 섬을 유명한 관광명소로 바꾸어주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의 섬을 살리게 된 것은 ‘세토우치(瀨戶內) 국제예술제’라는 행사 덕분이었다. 세토내해에 있는 12개의 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수백 개의 예술품을 설치하고 전시하는 국제예술제는 3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다. 그 결과 그 섬에는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 행사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데시마 미술관이다. 데시마는 인구가 1000명 정도 되는 고적한 느낌이 드는 작은 섬이다. 배에서 내려 렌터카를 타고 바다 옆으로 난 휘어진 길로 여유 있게 달리다보면 멀리 바다가 보이는 경사지에 조성된 계단식 다랑논이 보이고, 그 옆 언덕에 낮고 허연 덩어리가 보인다. 그 덩어리가 바로 일본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西?立衛)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이다.

그 미술관 쪽으로 다가서니 왕릉의 입구처럼 역시 땅에 파묻혀있는 안내소가 보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그 앞의 작은 동산을 빙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두툼하고 각을 살려 포장한 깨끗한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조용히 순례하듯 산을 돌아 미술관의 입구에 도달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미술관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 낮아 보였다. 그리고 거적을 살짝 들어 입구를 낸 움막처럼 작은 콘크리트 개구부가 나오고 그 앞에 신발을 벗는 장소가 나온다.

신발을 벗어야 하며,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떠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로 들어서니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내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웅크리고 있는 생물의 뱃속 같은, 벽과 바닥의 구별이 없이 모두 허연 그 공간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손으로 문질러 지워낸 듯 모호함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물방울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천정에 뚫린 거대한 두 개의 구멍으로 물이 새어 들어온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건 나이토 레이(?藤?)라는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했다.

바닥에 난 작은 구멍에서 물방울들이 스며들어 올라온다. 방수 처리된 바닥에서 마치 우산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연꽃 위를 구르는 물방울처럼,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들이 또르르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언가 홀린 듯 혹은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 공간을 경배하는 듯 서성거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물방울은 그 공간 안에서 활기차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기둥이 하나도 없는 그 공간은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조개껍질 같다. 흙으로 둔덕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조심스레 철근을 엮고 콘크리트를 붓고 콘크리트가 굳은 후에 흙을 파내어 공간을 완성했다. 땅속으로 들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결국 흙을 파내고 안으로 들어가 공간을 만든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이 있다. 예술이란 모호하고 조금 어렵다. 그건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거대한 이불과 같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덮는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그게 무언지 모르고 그게 어떤 형태인지 잘 알 수 없다.

자세히 인식하기 힘들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치유되기도 한다. 데시마 미술관에 미술은 없다. 설치도 없다. 단지 파고 들어가서 비워놓은 자연과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땅속 같은 공간에서 서성거리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고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아주 실질적인 생명의 공급원이며 추상적인 인간의 지향점이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건축은 아주 구체적인 공간을 지향하면서도, 극도로 추상적인 공간의 이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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