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설왕설래] 노구교의 비극

관련이슈 설왕설래

입력 : 2016-08-07 22:22:37 수정 : 2016-08-07 22:23:14

인쇄 메일 url 공유 - +

노구교(蘆溝橋)는 베이징 서남부 펑다이구에 있다. 이 다리는 1192년 금나라 때 만들어진 돌다리다. 쿠빌라이 칸이 원의 수도를 대도로 정한 뒤 노구교는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대도는 지금의 베이징이다. 세계의 물산이 모여드는 대도. 서역의 사자와 상인은 이 다리를 건너 대도로 들어갔다.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이 다리가 세워진 지 93년 되던 해 이곳에 도착했다. 이렇게 적었다.

“캄발룩을 떠나 16㎞ 정도 나아가면 풀리상긴이라는 큰 강에 다다른다. 바다로 통하는 이 강에는 막대한 상품을 실은 상인들의 배가 오간다. 이 강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다리다.”

캄발룩은 대도의 다른 이름이다. 풀리상긴은 영정하다. 노구하라고도 한다. 중국어로는 루거우허다. 이 다리의 돌바닥을 밟는 사자와 상인들. 다리를 지나며 대칸의 위엄에 압도되지 않았을까.

노구교가 더 역사적인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친 전쟁’을 이곳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에 주둔한 일본군이 노구교 부근에서 야간훈련을 하던 중 병사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한다. 총소리까지 났다. 야단법석을 떤 모양이다. 다음날 새벽 일본군은 중국군이 총격을 가했다며 노구교를 점령하고 만다. 사라진 병사는 용변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관동군과 일본열도의 3개 사단을 동원해 베이징과 톈진을 공격했다. 노구교 사건이 일어난 지 27일 뒤의 일이다. 중일전쟁은 이로부터 시작한다.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중국군. 그해 12월 일본군은 난징에 진입했다. 이듬해 2월까지 대학살을 벌인다. 난징대학살이다.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 내기를 했다고 한다. 누가 침략자인지 논쟁이 더 필요한가.

일본 방위상에 오른 이나다 도모미. ‘여성 아베’로 불린다. 이런 말을 했다. “중일전쟁이 침략인지 아닌지 여부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다.” 침략을 부정하는 말이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매국노로 몰릴 판이다. 양심의 소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정치. ‘남왜(南倭)의 발호’가 가까운 것은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