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발룩을 떠나 16㎞ 정도 나아가면 풀리상긴이라는 큰 강에 다다른다. 바다로 통하는 이 강에는 막대한 상품을 실은 상인들의 배가 오간다. 이 강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다리다.”
캄발룩은 대도의 다른 이름이다. 풀리상긴은 영정하다. 노구하라고도 한다. 중국어로는 루거우허다. 이 다리의 돌바닥을 밟는 사자와 상인들. 다리를 지나며 대칸의 위엄에 압도되지 않았을까.
노구교가 더 역사적인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친 전쟁’을 이곳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에 주둔한 일본군이 노구교 부근에서 야간훈련을 하던 중 병사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한다. 총소리까지 났다. 야단법석을 떤 모양이다. 다음날 새벽 일본군은 중국군이 총격을 가했다며 노구교를 점령하고 만다. 사라진 병사는 용변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관동군과 일본열도의 3개 사단을 동원해 베이징과 톈진을 공격했다. 노구교 사건이 일어난 지 27일 뒤의 일이다. 중일전쟁은 이로부터 시작한다.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중국군. 그해 12월 일본군은 난징에 진입했다. 이듬해 2월까지 대학살을 벌인다. 난징대학살이다.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 내기를 했다고 한다. 누가 침략자인지 논쟁이 더 필요한가.
일본 방위상에 오른 이나다 도모미. ‘여성 아베’로 불린다. 이런 말을 했다. “중일전쟁이 침략인지 아닌지 여부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다.” 침략을 부정하는 말이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매국노로 몰릴 판이다. 양심의 소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정치. ‘남왜(南倭)의 발호’가 가까운 것은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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