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낮 12시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을 지나던 중 한 비영리 사단법인의 이름이 박힌 노란 조끼를 입은 남성이 말을 걸었다. “설문 조사만 하면 되냐”는 물음에 그는 정기 후원 신청서를 보여주며 “후원 신청은 선택 사항”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라는 이 남성은 이내 “정기 후원은 1만원부터 할 수 있다”면서 후원을 권유했다. “후원하는 단체들이 많아 고민해보고 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한 달에 커피 두 잔만 안 마셔도 되는데”라며 재차 설득했다. 결국 같은 말을 서너 번 더 반복하며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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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캠페인에 참여하라는 비영리단체(NPO) 소속 거리 모금 활동가의 권유에 한 여성이 손사래 치면서 지나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거리 모금은 단체들이 잠재적인 후원자를 직접 만나 단체의 활동을 소개하고 관심과 인지도, 후원 참여를 높이는 장이다. 대부분 널빤지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용지에 체크하는 방식으로 설문 조사에 응해달라고 한 뒤 정기 후원을 권유한다.
거리 모금 활동은 어느 단체든 진행할 수 있다.
관할 구청이나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돼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거리 모금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인도에 설치하는 시설물은 현행법상 도로 점용 허가 대상이 아니다”며 “이들 단체에 시민들이 통행할 때 불편하지 않게 하라고 계도한다”고 설명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도 “거리 모금 활동 신고는 별도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일부 단체 활동가들의 도 넘은 행위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몇 달 전 길거리에서 한 종교계 사회복지법인 활동가를 만나 매달 1만원을 후원하겠다고 했더니 ‘조금 더 하면 안 되냐. 얼마까지 할 수 있냐’고 되묻더라”면서 “후원금 액수를 두고 흥정하는 것만 같아 후원을 신청한 뒤 얼마 안돼 끊었다”고 했다. 김씨는 “호객 행위를 하듯이 후원자를 모집하는 모습을 보고 ‘이 단체가 돈을 어떻게든 긁어모으려는 건 아닌가, 후원금을 과연 투명하게 쓸까’ 의문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경희대 공공대학원 김운호 교수(시민사회NGO학)는 “NPO는 기부나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거리 모금 활동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인력 부족 등으로 외주를 줘서 활동을 벌이는 단체가 있는데, 활동가들의 성과가 우선시될 경우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공익법인 정보 제공 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의 박두준 사무총장도 “주로 대행업체 직원들이 목표 달성 위주로 하다 보니 시민들의 외면과 불신을 불러 거리 모금이 위축되고 기부 활성화에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면서 “단체들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미국처럼 국세청에 신고하는 자료를 단체 홈페이지에도 공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후원금 용처 등 단체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사무총장은 또 “길거리에서 즉흥적으로 후원을 신청하는 대신, 국세청 홈텍스 등에 단체 이름을 검색해 투명성·효율성 등을 살피고 후원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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