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본은 지진이 빈번해 과장을 좀 보태면 생활의 일부처럼 지진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생활 일부가 아닌 자체를 바꿔놓기도 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 그런 삶을 사는 '미니멀 리스트'가 NHK 등 현지 언론을 시작으로 TV, 드라마로 소개되며 일부에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5년 신조어'로 꼽히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선구자 된 그들은 왜 불편해 보이는 이런 삶을 선택한 걸까. 많은 미니멀 리스트가 대중에 소개됐지만 가장 유명한 한 여성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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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TV 드라마 `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미니멀 리스트의 삶을 주제로 했다. (사진= NHK 캡처) |
▲ 대지진이 바꾼 삶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유루이 마이씨는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일러스트로 표현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 후 그녀의 삶은 TV드라마로 제작되며 대중에 소개됐다.
그녀가 미니멀 리스트가 된 사연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14시쯤 일본 토호쿠 지방을 강타한 관측 사상 역대 최대이자 최악의 동일본대지진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피해가 컸던 센다이에 살고 있었다.
유루이씨는 "집 전체가 크게 요동치고 집 안에 있던 물건이 흉기로 돌변해 나와 가족을 위협했다"며 "집에는 필요한 물건보다 불필요한 물건이 많았고 대부분 못쓰게 됐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물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는 보통 사람이 볼 땐 "정말?"이라고 의문들 정도다. 그녀가 집에 들인 물건은 냄비 3개, 프라이팬 2개, 4인 가족 식기류, 컵 11개, 탁자, TV가 전부다. 컵이 많은 이유는 "손님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여성임에도 액세서리는 단 1개뿐이며 옷장에는 옷 서너 벌과 가방 1개가 있다.
유루이씨는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집에 물건들일 때나 선별해 치울 때 가족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생활을 못 하진 않겠지만 가족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이유와 상당한 불편함이 뒤따르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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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리스트의 집. 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집안에 들인다. 개인차는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7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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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송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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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정리한 사진. 전과 비교된다. |
▲ 생각처럼 불편하진 않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 제한한다. 이렇게 남은 물건들은 애착을 갖게 한다”는 유루이씨는 가족의 이해와 자신의 선택에 만족감을 보였다.
그녀는 “집에는 필요한 물건보다 불필요한 물건이 생각보다 많다. 왜 있어야 하는지, 있었는지도 모르는 물건은 분명 누구나 가지고 있다”며 “존재가 불분명한 물건에 의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한다면 이내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건에 집착하게 되면 그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생기는 상실감에 행복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며 "욕심을 버리고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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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불분명한 물건에 의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한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
미니멀 라이프는 일부의 얘기로 이렇다 할 정의나 기준은 아직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단순히 물건을 치워버리는 게 아닌 물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한 나만의 것'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삶을 사는 그들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한편 대지진 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며 사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이뤘던 것들이 한순간에 파괴되고 사라지는 광경을 직접 경험한 그들은 자기현시 욕구를 줄이며 주변의 소중함을 중시했다.
일본 사회심리학자들은 "대지진이라는 심각한 공포를 경험한 후 가족과 주변을 지키려는 욕구가 높아진 것"이라며, 이 같은 심경 변화를 ‘공포감으로 인한 안정 추구 경향’이라고 해석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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