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의 삶이 언제나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화공으로서 세상의 편견을 감내해야 했고,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그래도 곁에는 두 친구가 있었으니, 정란과 강희언이다.
‘단원도’의 무대는 김홍도의 집이다. 화면 윗부분의 글에 의하면 김홍도의 나이 37세 때인 1781년 12월(음력), 입춘이 지나고 세 사람이 사랑방 마루에 모였다. 그들은 이 자리를 ‘진실되고 법식에 거리낌 없는 모임’이라는 의미로 ‘진솔회’(眞率會)라 이름을 짓고 소박한 잔치를 열었다. 김홍도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고, 강희언은 무릎을 세운 채 부채질을 하며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다. 옆에 앉아 장단에 맞춰 시를 읊고 있는 이가 정란이다. 강희언은 중인가문 출신으로, 하늘의 기운을 관찰하여 운세를 점치던 관상감(觀象監) 소속 관리였다.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정란은 시인이자 여행가이다. 부산 동래 출신인 그는 일찍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조선 천지를 넘나들며 시인묵객들과 어울렸다.
김홍도가 ‘단원도’를 실제 그린 때는 모임을 열고 3년이 지난 1784년이다. 3년 후 세 사람의 삶은 많이 변해 있었다. 김홍도는 안동의 찰방(察訪)으로 부임했지만 생활이 몹시 궁핍했다고 하며, 강희언은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정란은 세상풍파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다. 김홍도는 그림을 통해 현실은 힘들었지만 각자 분야에서 한 시기를 풍미한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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