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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겪는 상실의 그림자 … ‘관광엽서’처럼 그려내다

입력 : 2016-07-04 21:16:45 수정 : 2016-07-04 2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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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첫 장편 ‘환상의 빛’ 20여년 만에 국내 개봉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울리며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환상의 빛’(1995)은 그의 첫번째 장편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클래식’의 출발점이다. 국내에서는 그간 특별전 형식으로 몇 차례 상영되었을 뿐 7일 20여년 만에 비로소 정식 개봉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장편 ‘환상의 빛’은 ‘죽음’과 ‘상실’을 주제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다.
일본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글을 담은 서간문학이다. 다큐멘터리 연출가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여기에 또 하나의 모티브를 더한다. 보건후생성 고위관리의 자살을 파헤친 ‘그러나 ···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1991)를 찍으며, 홀로 남겨진 미망인으로부터 ‘환상의 빛’에 대한 영감을 얻고 ‘죽음’과 ‘상실’의 주제를 꺼내 놓는다.

영화는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생을 떠난 남편 이쿠오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가는 유미코(에스미 마키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미코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행방불명되던 날을 기억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종종 유미코의 일상을 파고들고, 유미코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 이쿠오와 결혼한 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두번째 이별과 느닷없이 맞닥뜨린다. 이쿠오가 자살한 그날 밤, 유미코는 또다시 상실의 아픔 속에 내던져진다. 이쿠오의 죽음에도 계절은 바뀌고, 7년의 시간이 흘러 유미코는 재혼을 통해 행복한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쿠오에 대한 기억들이 불현듯 찾아오고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

누구나 유미코처럼 무수한 상실을 경험한다. 가족, 연인, 친구, 혹은 교문 앞에서 만난 노란 병아리까지. 상실의 시간은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듯 보이지만 기억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슬픔과 그리움의 감정들 또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렇듯 유미코의 이야기는 모두가 경험한,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영화는 유미코가 한 발짝 나아가기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는 기억으로부터 치유되고 어떻게 그 기억을 극복하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최고의 명장면은 클라이맥스 10분이다. 롱샷과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해 인물의 감정에 깊이 개입하지 않은 채, 담담하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일관하던 영화가 엔딩에 이르러 참아왔던 감정을 단번에 쏟아낸다. 아무에게도 속내를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아픔을 삭여왔던 유미코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영화는 억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관객들의 가슴에 굵직한 생채기를 남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는 늘 ‘죽음’이 배치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남은 자의 삶 속에 내재한 죽음에 대해, 죽음의 그림자들이 삶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그는 죽음 그 자체보다, 상실의 아픔을 안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장면들이 관광엽서처럼 매혹적이다.

‘환상의 빛’은 1995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황금오셀리오니상)을 비롯해 가톨릭협회상, 이탈리아 영화산업협회상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이밖에 로테르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돼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작품성과 흥행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다.

‘환상의 빛’에 이어 28일에는 그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가 선을 보인다. 올 여름 팬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작과 현재를 동시에 만나 볼 수 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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