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성(性)’에 따라붙는 말은 으레 ‘도덕, 윤리’와 같은 것이어서 ‘성도덕, 성윤리’라는 말이 그만큼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성은 신비롭고 성(聖)스러운 영역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추문’ ‘추행’이나 ‘폭행’ ‘폭력’과 같은 끔찍한 단어가 ‘성(性)’ 자 뒤에 따라붙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성이 섹스라는 야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신문, 잡지는 물론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까지 아예 점령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모니터 주변의 발칙한 사진들은 온통 성(性) 지뢰밭이다. 마우스를 갖다 대는 순간 야동과 야사가 터지고 만다.
추문(醜聞)은 ‘추근’거리며 행하는 ‘추잡’한 소문이고, 추행(醜行)은 순간의 자극을 ‘추구’하다가 영원히 ‘추락’’하게 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폭행(暴行)은 난폭한 행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강간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폭력(暴力)이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물리적 힘을 이용하여 신체적 손상까지 입히는 경우를 뜻한다. ‘여교사 성폭행’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성폭행 연예인’ ‘고교생 집단 성폭행’ ‘장애인 상습 성폭행’ ‘몰카족’ 등의 뉴스 타이틀을 보면 성 문제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 직업이나 계층, 나이와는 무관하게 나타난다.

성(性)은 본래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성품, 곧 마음 바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맹자는 마음 바탕은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보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하지만 성이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가리키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자 유교 사회에서는 성을 금기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성에 대하여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성에 대한 가르침은 없이 감추는 것만 미덕으로 생각해 온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처럼 왜곡된 성 지식을 바로잡아 주고 행복한 성문화 운동을 펼치고자 지난달 한국에이즈퇴치연맹(대표 권동석)에서는 서울시 성북구에 한국성교육센터를 설립하고 문을 열었다. 여기에서는 누구든지 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기구를 통하여 임신과 출산 및 육아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면 나올 때는 성에 대하여 똑똑해진다는 의미에서 ‘똑똑 성교육관’이라 이름 붙였다. 또 성은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 성인 등 누구나 주위의 또래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특성이 있으므로 센터에서는 ‘또래 지킴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첫째, 성(性)은 신비롭고 고결하다. 그래서 ‘성스러울 성(聖)’과 통한다.
둘째, 그러면서도 성은 별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별 성(星)’과 통한다.
셋째, 성은 성스럽고 아름답기에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살필 성(省)’과 통한다.
넷째, 이토록 고귀한 성은 평생 정성으로 잘 가꿔야 한다. 그래서 ‘정성 성(誠)’과 통한다.
다섯째, 성은 고귀하기에 성처럼 든든하게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성 성(城)’과 통한다.
여섯째, 굳게 지켜야 할 성이지만 ‘성숙한 인간’, 곧 성인(成人)에게만은 허락된다. 그래서 ‘이룰 성(成)’과 통한다.
일곱째, 하지만 성의 원초적 의의는 혈통을 잇는 데 있다. 그래서 ‘성 성(姓, family name)’과 통한다.

정상이 아닌 성욕을 가졌거나 성적으로 이상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켜 ‘변태(變態)’라고도 한다. 변태란 동물이 알에서 부화해서 성체(成體)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일, 곧 탈바꿈을 가리킨다. 인간 변태는 한마디로 비정상이란 얘기니 미리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 성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생각 사(思)’ 자에 그 해답이 있다. 사(思)는 원래 ‘정수리 신(?)’ 밑에 ‘마음 심(心)’을 더한 글자였는데, 예서 시대가 되면서 신(?)이 전(田)으로 바뀌었다.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과 가슴에서 나오는 ‘의지’가 결합될 때 진정한 사(思)가 된다. 문제는 생각만 하고 의지가 없어도 안 되고, 의지만 있고 생각이 없어도 문제가 된다. 생각은 올바른 방향을 낳고, 의지는 꾸준한 노력을 낳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만년에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나 걸렸다”라고 고백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맞나 보다.
무더운 여름, 노출의 계절에 남녀 간에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농담을 주고받겠지만 신중하지 못하면 성이 성낼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성폭행 예방을 위한 단어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추천한다. 한 호흡 멈추고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성폭행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권상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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