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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앍는 건축과 사회] <141> 건축에 담긴 3의 비밀

입력 : 2016-06-24 10:00:00 수정 : 2016-06-23 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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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머무는 공간엔 ‘3의 배수’ 치수의 원칙 숨어있어 경탄
위층 침실에서 거실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건축에 담긴 3의 비밀


예전에 손으로 그리던 도면을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린다. 건축·조경·토목 등의 분야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토목설계 분야와 건축설계 분야는 각각 쓰는 단위가 다르다. 같은 ‘1’이라는 치수를 입력했을 때, 토목에서는 그것은 1m를 의미하지만 건축은 1㎜로 1000배의 차이가 난다. 그래서 300이라고 수를 입력할 때 토목도면은 300m이고 건축도면은 300㎜, 즉 30㎝가 된다. 교량이나 도로를 그리는 작업과 건물,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몸을 기대는 집을 그리는 작업이 체감하는 치수의 차이는 그렇게 엄청나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집을 짓고 길을 닦으며 적당한 치수를 만들었고,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표준화했다. 도면에 쓰이는 기호나 치수는 어느 정도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예를 들어 문의 폭은 거의 90㎝ 내외이다. 그에 따라 부속 철물 등이 일정한 규격으로 제작된다. 더 커지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때 힘을 받는 경첩에 문제가 생겨서 나중에 문이 쳐질 수 있다. 그래서 더 넓은 폭으로 계획할 때는 열리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게 규격화된 부분들이 있기에 축척 표기가 없는 도면을 볼 때도 문이나 계단 등의 크기를 보면 집 전체의 규모를 유추해낼 수 있다.

집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모두 일정한 치수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건축은 무수한 숫자로 이루어진 통일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숫자 안에 최소공배수를 꼽아보라고 하면 떠오르는 숫자는 3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가구의 폭 높이, 문의 넓이, 천장의 높이, 폭도의 폭 등 무수한 치수는 모두 3의 배수이다. 문의 폭은 보통 90㎝이고, 문의 높이는 2.1m이고 복도의 폭은 90㎝ 혹은 120㎝, 천장의 높이는 240㎝이니까 모두 3의 배수에 해당된다.

또한 신기한 것은 예전 우리나라의 축척으로 쓰인 한 ‘자’라는 단위 역시 30㎝ 정도였고, 서양의 1ft도 약 30㎝이다. ‘자’나 ‘피트’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인데 그 치수는 사람의 발의 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팔을 옆으로 뻗었을 때 코에서 손끝까지의 거리를 야드라고 하는데 1야드가 90㎝이니 역시 3의 배수에서 나온 단위인 셈이다.

아래층에는 2.4m의 폭 안에 드레스룸과 통로와 차를 끓이거나 간이 조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오른쪽)를 두고, 안쪽으로 화장실(왼쪽)까지 넣었다.
대부분의 가구와 공사의 재료가 되는 자재 또한 마찬가지인데, 합판 규격도 3×6크기(910㎜×1820㎜), 4×8크기(1220㎜×2440㎜) 이런 식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문을 짠다든지 책상을 짠다든지 할 때도 3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는 3의 배수로부터 비롯된 치수의 원칙이 숨어 있다.

면적을 헤아릴 때 많이 쓰이는 ‘평’이란 단위는 3.3㎡인데, 원래는 우리나라 단위가 아니고 1902년에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서양과 교역하기 위해 일본의 곡척(曲尺)을 들여와 쓰면서 생긴 것이다. 이게 한 척이 30.3㎝인데, 환산하면 한 평이 사방 여섯 자, 즉 가로 세로 0.818…이렇게 나가는 단위이다. 즉 다다미 한 장이 가로가 세 자, 세로가 여섯 자로 반 평이 되고, 다다미 두 장이 한 평이 된다.

지금은 미터법을 사용하자고 정했기 때문에 평이라는 단위를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워낙 익숙하게 썼기 때문인지 3.3㎡로 바꾸어 병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아주 오랜 시간 사람의 몸에서 만들어져 익혀진 감각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은 무척 억지스런 일이이고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계단실에 붙어 있는 폭 2.4m, 깊이 6m, 높이 4m의 공간을 이용해 복층의 주거공간으로 개조한 제기동 신혼집. 바닥면적은 좁고 천장은 높아 이를 이용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배치했다.
#휴먼 스케일


인간은 3이라는 숫자를 유독 좋아한다. 솥의 발도 3개이며 천하를 놓고 다투는 나라도 대개 세 나라이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를 이야기하고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도 늘 셋이다. 숫자 3이란 인간에게는 완전한 숫자이며 안정된 숫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몸도 무수한 3의 배수로 이루어져 있다.

책상이나 의자 같은 가구들, 싱크대 등등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규격은 모두 사실 생활에서 나온 치수들이다. 피트나 야드 단위들과 마찬가지로 인체 표준을 고려한 공용의 치수인 것이다.

건물의 복도는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일반적인 어깨 폭 60㎝의 두 배인 1.2m, 혹은 여유를 두고 1.5m 이런 식으로 해서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폭으로 계획한다. 편복도라고 해서 한 쪽에만 복도 한쪽에만 방들이 있는 경우에 복도 폭을 1.5m 정도로 보는데, 문을 열었을 때 사람이 서 있어야 하니까 60㎝ 더하기 90㎝라서 그렇다. 만약 중복도라고 해서 양쪽에서 문이 열리는 복도면 적어도 문끼리 부딪히지는 않아야 하니까 90㎝ 더하기 90㎝, 180㎝는 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병원 복도 같은 경우엔 침대가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넓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엔 계단 폭도 1.2m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단독주택의 경우는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 폭을 60㎝로 만들어도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지만, 사람이 사용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수치를 생각해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보통 방의 크기를 가늠할 때도 우리는 ‘몇 자 장이 들어가는 방’ 등 나름의 스케일 감각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가령 안방 같은 경우 적어도 열두 자 이상의 장롱이 들어가야 한다고들 하며 크기를 정하곤 한다. 열두 자 장이라면 그 폭이 3.6m가량 된다. 창문 폭도 60㎝, 90㎝, 120㎝, 또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도 90㎝, 120㎝ 이런 식으로 3의 배수에서 비롯된 치수들이 숨어 있다.

인체 표준을 고려한 공용의 치수를 찾는다고 할 때, 서양인들과 동양인들의 평균 신장이 차이가 났을 때는 수입 가전이나 세면대 등의 크기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외국 브랜드의 변기 같은 것들을 사용할 때 국산 브랜드들에 비해 폭이라든지 높이의 차로 인해 불편함을 간혹 느끼기도 했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체격이 커져서 큰 차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인체에 기반을 둔 이른바 ‘휴먼 스케일’을 건축가들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미적인 취향이나 기호에만 맞춰 설계를 하다 보면 옷이 들어가지 않는 옷장이라든가 닫히지 않는 문, 방에 들어갈 수 없는 가구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 규격이 결국 사용하는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계획을 하면 생활에 좀 더 편안하고 편리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자재의 규격을 고려해 자투리 없이 가구를 만들면 원가가 절감되듯, 공간도 사용자의 몸을 잘 고려하면 더 맞춤옷 같은 맞춤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듯한 분위기의 위층 침실 모습.
#몸에 맞는 집


신혼부부를 위한 집을 만든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결심하는 데 있어서 참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걱정거리도 많지만, 가장 어려운 준비물은 바로 집이다. 일단 구하는 일 자체가 큰 문제이니 그 안의 공간이 얼마나 생활에 맞고 취향에 맞느냐를 고민할 틈이 별로 없다. 남의 눈도 의식해야 하고 생활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다 보니 집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은 기성복을 대충 사서 입는 것처럼 그럴듯하긴 하지만 어딘가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서울 제기동에 만들어준 신혼집은 무척 특별했다.

몇년 전 봄날, 고등학교 동창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를 처음 뵌 게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여전히 무척 건강하시고 반듯하신 분이다. 한번 제기동에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는데, 제기동은 그분이 아주 오랫동안 살고 계시는 동네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무척 자주 그 집을 들락거렸고 그때마다 밥을 얻어먹었다. 어느 연말에 친구들과 모여서 놀다가 죄송하게도 비싼 가구를 많이 망가뜨렸던 집이기도 하다. 그 어머니는 무척 엄한 분이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왠지 나는 많이 봐 주셨고 밥도 푸짐하게 퍼주셨다. 밥 많이 담아주는 것이 정의 표현이었던 때였다.

한약방이 줄지어 들어선 시장 한복판에 집이 있었는데, 그곳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반듯한 한옥들이 들어서 있는 호젓한 동네였다. 그리고 동네 한가운데 있었던 친구 집 역시 큰 규모의 한옥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헐리고 4층짜리 상가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1층에서 3층까지는 임대를 주고, 4층에 있는 집에서 친구의 형인 큰아들과 손자 손녀와 살고 계셨다. 장손인 손자가 결혼하게 되었는데, 기특하게도 밖으로 나가 살지 않고 몇년 동안이라도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살던 방에서 신혼을 시작하자니 아무래도 아쉽던 터에, 계단실에 붙어 있는 폭 2.4m, 깊이 6m, 높이 4m의 공간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의견이 나왔고 그 방의 설계를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공간은 면적으로 치면 14.4㎡, 4평이 조금 넘는 공간이고, 사실 그 공간은 계단참에 붙여 각 층의 화장실을 배치하는 자리였다. 가장 위층이다 보니 화장실을 넣지 않고 옥상에 있는 물탱크 사이에 공간을 남겨 창고 등의 용도로 쓰던 공간이었다.

14.4㎡의 넓이는 국토부에서 한 사람을 위한 최소 거주면적으로 정한 넓이이기도 하다. 두 명이 사는 공간이라 그렇게 넓을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그래도 기껏해야 한 사람의 최소 주거면적 안에 둘이 사는 공간을 만들자니 좀 난감하기는 했다. 그러나 바닥면적에 비해 천장이 높아 그것을 입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잘하면 두 사람을 위한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신혼부부 둘 다 직장을 다녀서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할 테고, 밥은 원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주방, 식당, 거실 등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4m 높이를 이용해서 거실과 침실을 수직으로 분리하여 복층으로 구성을 하기로 했다. 계단과 사다리의 중간쯤 되는 계단 모양의 사다리를 설치하고 위층에 침실과 간단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책상을 짜 넣었다. 그리고 아래층에는 2.4m의 폭 안에 드레스룸과 통로와 차를 끓이거나 간이 조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를 두고, 안쪽으로 화장실까지 넣었다. 현관 바로 옆에는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나와 제법 거실 같은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좁은 공간이 좀 더 넓어 보이도록 하얀색 페인트와 투명한 마감재를 이용하여 심정적으로나마 조금 넓은 느낌이 들게 했다. 침대 화장대 옷장 싱크대 책상 등 모든 가구와 공간의 크기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최소이며 최적의 크기로 정했으며, 표준의 치수를 채택하여 공사비를 최소화했다. 그 집은 마치 몸의 치수를 신중히 재보고 정확히 마름질해서 만든 옷처럼 최적의 공간이 되었다.

그것은 결국 오래된 상가주택 안에 속이 하얗고 반들거리는 얇은 상자를 하나 끼워 넣는 일이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상자가 아주 잘 들어가며 잘 마무리되고 드디어 나는 40년 전의 밥값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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