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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구슬이 구슬을

입력 : 2016-06-12 18:09:01 수정 : 2016-06-12 18: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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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 (1942~ )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
유리구슬이 유리구슬을 밀어내었다

구슬이 구슬을 치면 구슬 탓이냐
구슬 탓이다
둥글둥글 맨질맨질 전신이 정점인
저 잘난 구슬 탓이다
민다고 쪼르르 달려와서
저와 똑 같은 것을 쳐서야 되겠느냐
치자고 밀었겠느냐
둥글둥글 어울려서 놀자고 밀었겠지
놀자고 오는 걸음이 총알 같았겠느냐
밀었거나 퉁겼거나 친 것은 구슬이네
아픈 것도 구슬이네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하네


‘시(詩)란 무엇인가’라고 시인 100명에게 묻는다면 모두 답변이 다를 게다. 타 장르와 달리 시에는 아직 정립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수가 동의할 요소가 있다면 ‘시란 함축적인 글’이란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비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김영남 시인
인용 시는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는 비유와 성찰로 시작한다. 근거로 유리구슬을 든다. 유리구슬의 외형, 속성과 더불어 구슬치기 할 때의 독특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흥미로운 비유와 성찰로 구슬같이 처신하는 사람의 행동이 떠오른다. 마지막에 서두의 표현을 반복함으로 유리구슬의 둥긂이 사람의 맘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는 효과도 거둔다.

문장에 ‘구슬’과 ‘둥근’이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해 시가 단조로워질 것 같지만 거느리는 의미와 상징하는 내용이 예상보다 크고 다양하다. 표현도 비범함을 넘어 언어유희 수준에 가깝다.

탁월한 비유는 물론, 이처럼 언어를 효과적으로 부리는 능력도 함축적인 글의 확보에 기여함을 볼 것이다. 시의 긴장감과 탄력성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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