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구슬이 유리구슬을 밀어내었다
구슬이 구슬을 치면 구슬 탓이냐
구슬 탓이다
둥글둥글 맨질맨질 전신이 정점인
저 잘난 구슬 탓이다
민다고 쪼르르 달려와서
저와 똑 같은 것을 쳐서야 되겠느냐
치자고 밀었겠느냐
둥글둥글 어울려서 놀자고 밀었겠지
놀자고 오는 걸음이 총알 같았겠느냐
밀었거나 퉁겼거나 친 것은 구슬이네
아픈 것도 구슬이네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하네
‘시(詩)란 무엇인가’라고 시인 100명에게 묻는다면 모두 답변이 다를 게다. 타 장르와 달리 시에는 아직 정립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수가 동의할 요소가 있다면 ‘시란 함축적인 글’이란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비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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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시인 |
문장에 ‘구슬’과 ‘둥근’이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해 시가 단조로워질 것 같지만 거느리는 의미와 상징하는 내용이 예상보다 크고 다양하다. 표현도 비범함을 넘어 언어유희 수준에 가깝다.
탁월한 비유는 물론, 이처럼 언어를 효과적으로 부리는 능력도 함축적인 글의 확보에 기여함을 볼 것이다. 시의 긴장감과 탄력성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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