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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국회, ‘당쟁의 마당’에서 ‘당쟁의 도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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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6 20:58:52 수정 : 2016-06-06 20: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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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도, 야당도 없이 뒤죽박죽
역설과 분노만 가득 차 있어
제 역할·책임은 망각한 채
국회독재의 혼란에 빠져
과연 대한민국은 있는가
10여년 전에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그 책은 표절논란에 휩싸여 결국 표절로 판정나는 추태를 보였지만 필자는 실제 그 내용에 별 관심이 없다. 지독한 일본폄하 에세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의 나라를 두고 ‘있다’ ‘없다’라는 극단적인 말로 단정을 하는 이분법적 태도는 바로 한국인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일본 식민지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국민들로 하여금 잠시 콤플렉스 해소용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지금 그 책명이 떠올랐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원구성도 못하는 20대 국회를 보고 불현듯 ‘대한민국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말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없다는 뜻이다. 정체성이 없으니 날마다 대양의 돛단배처럼 출렁이고 불안하다. 19대 국회 내내 민생 관련 법안도 ‘국회선진화법’에 막혀 제때에 통과시키지 못하고 당파적 이익에 맞는 것만 통과시키다가 상정된 수많은 법안을 폐기처분케 한 국회가 이제 원구성도 못하고 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국회는 당쟁의 마당이 된 지 오래이고, 이제 당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쟁은 이제 체질화됐다. 야대여소가 된 국회에서 야당이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것이 ‘상시 청문회법’이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그동안 장관급 각료 임명의 청문회를 보면 인신공격에 당파적 이데올로기의 폭로, 남남갈등, 여야갈등만 드러내는 꼴이었다. 한마디로 당파싸움 잘하려는 법이었다. ‘국회선진화법’과 ‘상시 청문회법’이 잘 공조하면 대한민국은 무력화될 수 있고 ‘국회독재’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아마도 앞으로 기상천외한 법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이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호 법안으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한다. 나머지 국민의당 의원 37명이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다. 법안에는 ‘누구든지 신문, 방송이나 각종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5·18민주화운동을 비방·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고 한다. 특정지역 당으로 통하는 국민의 당이 내놓은 법안이다.

3·1운동도, 동학농민운동도 이렇게 대놓고 ‘비방왜곡하면 징역벌금에 처한다’는 법률을 제정한 적이 없다. 5·18이 국민적 운동이 되는 것은 미래 역사의 몫이다. 이렇게 무리하게 역사를 법률로 예단하는 것은 선제적으로 국민에게 재갈을 물린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역사에는 어떠한 성역도 없다. 역사는 언론자유와 출판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부도 국회도 없고, 여당도, 야당도 없다. 서로 뒤죽박죽이 돼 제 역할을 지키지 않고 서로 영역을 침범하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욕하면서 분노에 차 있다. 여기에 법원은 ‘전관예우’의 배수진을 치고 정의(?)의 판관으로 버티고 있다. 로펌들의 경쟁에 의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국민들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이만하면 ‘대한민국은 없다’라고 걱정할 만하지 않는가.

언론의 여론도 편파성으로 출렁이고 있다. 분당한 야당은 특정지역에 가서 아부하느라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여당은 영남권 신공항 문제로 박 터지고 있다. 모두 당파이익과 지역이기에 눈이 멀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반성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걱정이다.

산업화시대에는 민주주의 운동권이 적어도 견제세력 역할을 하면서 성장했지만 지금 어느 누가 독재할 수 있는 시대인가. 그런데도 야당은 걸핏하면 ‘독재’ 운운하면서 여당을 공격한다. 그것은 ‘유령독재’이다. 전형적인 민주와 독재의 이분법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니 민생과 환경이 보일 리가 없다. 대한민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쌍한 대한민국’이다.

종합적으로 나라의 주체성이 없으니 나라 안은 혼란스럽고 나라 밖은 미국과 중국 양 강대국 사이에서 사대주의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국가백년지대계’는 고사하고 1년 앞도 못 보는 단견의 속출이다. 만약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다면 먼 후일 민주화세력은 단지 산업화세력에 무임승차한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역설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예전보다 잘살게 됐는데 지금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산업화와 정신문화가 동시에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해야 했는데 산업화만 이루었으니 ‘돈밖에 모르는 국민’이 됐다. 돌이켜보면 한반도에서 신의 한수는 남한에서의 대한민국의 탄생과 산업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은 지금 세계 최악의 ‘왕조전체주의국가’가 돼 있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남한은 지금 주인정신이 없어서 당쟁국회의 아수라장이 돼 있다. 남북한 모두가 문제이지만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이 걱정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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