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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호 힘썼던 젊은 시절 바람… 펭귄 가족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

입력 : 2016-06-05 21:31:23 수정 : 2016-06-05 2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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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상이군인 권영국씨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의용경찰로 활동하던 스물두 살 청년은 이듬해 3월 국군 3사단에 소위로 입대했다. 수개월이 지나 그는 강원 양구 ‘피의 능선’ 전투에 나섰다. 피의 능선은 한국전쟁의 대표적 격전지였다. 같은 해 7월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회담을 시작한 지 수개월 만에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사흘마다 고지 주인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왼팔 관통상과 온몸 곳곳에 있는 화상 자국…. 밤낮으로 계속된 참혹한 전투에 청년의 몸은 성할 리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치명상을 면했던 그는 해가 바뀌어서도 피의 능선을 지키다 결국 오른쪽 다리 일부를 잃고 말았다. ‘3·1절 기념 적군 생포작전’을 벌이다 지뢰를 밟은 것이다. 이후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세 차례나 부상 부위를 절단하는 고통을 겪었다. 청년은 의족을 찬 채 군 복무를 계속하다 입대한 지 6년 만에 소령으로 전역했다.

6·25때 강원 양구에서 벌어진 ‘피의 능선’ 전투에서 지뢰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은 권영국씨가 당시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권영국(87·상이 4급)씨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에 시달린다.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인근 자택에서 만난 권씨는 “이전에 비하면 덜하지만 아직도 가끔 신체 고통과 함께 시체더미들 속에서 전투하던 때가 떠올라 눈물이 나곤 한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피의 능선이 북녘 땅이 되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매우 시리단다.

권씨는 전역 후 교사와 은행원 등으로 새 삶을 살며 우수한 은행영업 실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뒤 한쪽 다리로 우여곡절이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혼자 전쟁에 나갔던 것도 아니고 국가가 잘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가끔은 유공자라고 대접받는 게 미안할 정도”라며 웃었다.

미수(米壽)를 앞둔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전우 등 국가유공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자 그림 붓을 들었다. 시와 붓글씨를 쓰며 닦아온 예술적 감수성을 더 늦기 전에 표현하고 공허한 마음도 달랠 겸 해서다. 그의 작품 ‘펭귄의 가족’은 지난 1일부터 서울 서부지법 청사에서 열리는 ‘참전용사 노년의 삶, 예술로의 승화’ 전시회에도 당당히 걸렸다. 

권영국씨가 서울 서부지법이 진행 중인 ‘참전용사 노년의 삶, 예술로의 승화’ 전시회에 출품한 ‘펭귄의 가족’.
권씨는 “펭귄은 부부애가 강하고 자식을 극진히 보살핀다”며 “보훈의 달을 맞아 가정의 화목이 국가의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세대들에게 “힘든 상황이지만 틈틈이 여행도 다니면서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고 안보·윤리·역사의식이 투철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글·사진=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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