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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백석을 아십니까

입력 : 2016-06-03 21:04:47 수정 : 2016-06-03 21: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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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고향의 풍경과 정서
우리말로 구수하게 그리고
일제강점기 우리말 지키려
우리 땅 떠나야 했던 사연…
백석의 삶과 문학 들려줘
박선욱 글/이상권 그림/산하/1만원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석/박선욱 글/이상권 그림/산하/1만원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학교의 한 교실에서 소년이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읽고 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낭독한 소년은 생각했다.

‘아아, 이런 것이 시로구나! 나도 시를 쓰고 싶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소년의 이름은 백기행. 훗날 ‘백석’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기행의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백석은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닐 것이다. ‘월북시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이 외면 받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백석은 ‘한국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등을 겪으며 곡절 많은 삶을 살았던 시인 백석의 일생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오랜 세월 ‘잊혀진 시인’이었던 그는 고유의 우리말로 아련한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그려낸 시인이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혼란기를 살아간 시인 백석은 한때 잊혀진 작가이기도 했으나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산하 제공
백석은 자신의 고향 정주가 따스하고 포근한 곳으로 남기를 내내 바랐다. 또 고향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우리말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기를, 영원한 생명력을 갖기를 소망했다. 그런 바람은 1936년 1월 첫 시집 ‘사슴’으로 결실을 맺었다.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헌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정주성’의 일부)

시집이 나올 무렵 일제는 우리말까지 없앨 준비를 하던 때라 백석은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말로 시를 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식민지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고 만주로 떠났다. 작가는 당시 백석의 상황을 “우리말을 지키려고 우리 땅을 떠나다니요. 이런 묘한 현실이 마음을 저리게 했어요”라고 전한다. 

백석의 시집 ‘사슴’.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고 ‘시를 쓰기 힘든 날들’은 이어졌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조차 금지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해방 후에는 “한가하게 개인의 아픔이나 자연의 경치를 노래하는 글이 무슨 문학이오?”라고 나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시를 향한 백석의 사랑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러시아 시인의 동화시집을 번역하고 자신의 쓴 동화시집을 냈다. 현실이 힘들고 고달파도 어린이들이 장차 살아갈 세상이 맑고 따스하기를 기원했는지 모른다.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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