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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제공 |
29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은 '거란 재침공! 강감찬, 왕에게 피난을 주장하다' 편을 방송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과 귀주대첩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집중 조명한다.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수도 개경까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한 고려. 하지만 고려 최고의 명장 강감찬은 당시 왕 현종에게 몽진을 주장했다. 즉 왕에게 피난을 떠나야 한다고 제안한 것.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던진 강감찬의 승부수는 어떻게 됐을까?
1009년 강조가 난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왕으로 세운다. 고려와 사대관계였던 거란은 이를 빌미로 40만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다. 거란군은 파죽지세로 통주를 무너트리고 개경 코앞까지 밀고 내려왔다.
풍전등화 위기에 처한 고려에서 신하들은 왕에게 항복을 청했다. 이때 항복을 반대하고 현종에게 몽진을 제안한 삶은 강감찬이었다. 현종은 강감찬의 말에 따라 그날 밤 급히 피난길에 올랐다. 시간을 벌기 위한 강감찬의 전략은 성공했을까.
1018년 12월 거란은 강동 6주를 탈환하겠다며 고려를 재침공했다. 거란군은 이전과 다르게 군사적 거점인 흥화진(현재 의주)을 공격하지 않고 우회하여 남진했다.
그러나 이를 예측한 상원수 강감찬은 흥화진 성 동쪽 삼교천에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 둑을 만들고, 적군이 이르자 막았던 둑을 터트려 물을 흘려보내는 수공 작전을 펼쳤다.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거란군은 제대로 전투를 치러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다.
'역사저널 그날'의 '만물각'에서는 강감찬 수공의 기술을 군사 및 고대 병법 전문가인 박금수 박사와 함께 분석해본다.
거란군은 흥화진 전투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경 부근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병력의 손실이 커지자 퇴각하려했다. 거란군은 귀주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감찬과 정면으로 대치했다. 고려군과 거란군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양측 모두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려에서 김종현이 병사를 이끌고 강감찬을 지원하기 위해 도착했다. 이어 비와 함께 남풍이 불어왔다. 거란군은 바람에 맞서 싸우는 상황이 됐고, 고려군은 강한 바람에 당황한 거란군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우리 역사 3대 대첩인 귀주대첩의 비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슈팀 ent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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