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늦은 밤 서울의 한 대학 축제를 찾은 정모(29)씨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3년차 직장인인 정씨는 이날 직장 동료와 퇴근 후 이곳을 찾았다. 대학시절 추억도 되살리면서 어린 친구들과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명 모두 넥타이도 풀지 않은 차림이었다. 이들이 주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순식간에 헐렁한 와이셔츠 하나만 걸친 ‘하의 실종 패션’의 여학생 5명이 달라 붙었다. 학생들은 정씨에게 “어디가요? 여자 2명 기다려요. 진짜, 합석합석!”이라며 팔을 붙잡았다. 못이기는 척 학생들을 따라간 그는 “왠만한 술집보다 낫다”며 “좋은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멋쩍어 했다.

대학 축제에 젊은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볼거리에 저렴한 비용으로 술자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편화된 ‘합석 문화’로 비교적 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25∼27일 축제를 진행한 A여대 등 대학 3곳의 주점 120여곳 대부분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각인 오후 8시쯤부터 줄을 늘어선 곳도 있었다. 정장 차림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인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젊은 직장인들은 큰 부담없이 유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 축제를 선호했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직장인 신모(28)씨는 “나이트 클럽 같은 유흥업소와 달리 대학 축제는 큰 돈 들일 부담이 없이 놀 수 있다”며 “합석도 해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2·여)씨는 “요즘 유행하는 ‘헌팅 술집’이 대거 몰려 있는 느낌”이라며 “꼭 합석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재밌게 놀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주점을 찾는 직장인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대학생 최모(21·여)씨는 “돈을 버는 것도 주점을 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구매력 있는 직장인들은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오후 10시 이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 되자 정장 차림은 아니지만 한 눈에도 학생 연령대가 아닌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편한 복장 차림인 직장인 지모(31)씨 일행은 “솔직히 이성을 만나러 왔다”며 “여대 주점이 합석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축제 주점의 ‘합석 문화’는 직장인을 모으는 요인 중 하나다. 이날 주점을 찾은 손님 대부분이 동성 일행과 함께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는 주점들 대부분이 최근 유행하는 ‘헌팅 술집’ 스타일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대부분 주점에서 빠른 비트의 최신 음악이 흘렀고 이성 간 합석도 거부감 없이 이뤄졌다.
일부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곳을 제외한 주점들은 대개 ‘합석’을 내세워 홍보하고 있었다. ‘이성과 합석이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곳도 빠짐 없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생 윤모(24)씨는 “미러볼 조명도 구입하는 등 최대한 ‘핫’하게 보이려 했다”며 “남·여 불문 합석 의사를 밝히면 ‘큐피드’ 역할을 해준다”고 귀띔했다.
대학 주점 문화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날도 여대 등에서는 ‘세라복’이나 간호사복, 가슴골이 깊게 패인 의상 등을 입은 여학생들이 노골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축제를 찾은 강모(51·여)씨 부부는 “아직 어린 학생들이 유흥업소 같은 분위기를 만들려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백모(24·여)씨는 “젊은 세대가 향유하는 하나의 문화일 뿐”이라며 “즐기려는 축제에 고상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 김창수 교수는 “대학 축제에 대학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대중적이고 상업적 성격이 짙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주점 위주의 축제 문화는 현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옳고 그름을 떠나 학생들이 만든 축제에 정작 학생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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