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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곡성’ 쿠니무라 준 “일본에도 나홍진 같은 감독 필요해”

입력 : 2016-05-18 07:01:00 수정 : 2016-05-19 08: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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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이 배우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됐을 것. 데뷔 35년 만에 한국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일본의 베테랑 배우 쿠니무라 준(61) 얘기다.

한 마을에 외지인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그린 ‘곡성’에서 쿠니무라 준은 말 그대로 외지인 역을 맡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체에 의문을 품게 하는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결코 친절하지 않은 캐릭터지만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꽤 오랫동안 뇌리에 잔상이 남아 있었다. 놀랍고도 강렬한 한국영화 데뷔.

쿠니무라가 연기를 시작한 건 1981년 어린이 영화 ‘가키테이고쿠’를 통해서였고,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레인’(1989)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에 눈 뜨게 된다.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과 같은 할리우드 작품은 물론, 홍콩 영화 ‘화기소림’(1994), 최근작인 프랑스 영화 ‘레귤러 하트’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 시스템을 경험했다.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일본 영화 ‘피와 뼈’를 비롯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아웃레이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일본의 거장들과도 협업했다. ‘진격의 거인’ 시리즈나 수많은 일드를 통해 국내에도 그를 알아보는 팬들이 많다.

◆ ‘일본사람’ 아닌 ‘외지인’ 역할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나홍진 감독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영화 ‘곡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 감독의 전작들, ‘추격자’와 ‘황해’를 보게 됐다는 그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노출연기가 좀 망설여졌어요. 다른 것보다 관객들에게 보여줄 만한 몸매인지 확신이 서지 않더라고요.(웃음) 그 외 샤머니즘이나 초현실주의, 종교 등에 관한 이야기엔 전혀 거부감이 없었죠.”

일본인 배우가 한국영화에서 ‘외지인’이라든지 ‘타자’ 역할을 하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이에 쿠니무라는 “처음에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했다.

“정치나 외교 문제를 반영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저를 ‘일본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역할 자체가 관객들에게도 ‘일본인’으로 고착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봤죠. 그래서 감독님께 역할명을 일본인이 아니라 외지인으로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냥 제 역할은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 들어온 이물질 정도라고 봐 주시면 되겠네요.”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2016) 스틸


◆ 김환희 양의 연기는 굉장하더라

‘곡성’으로 칸영화제에 처음 가게 된 그는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재차 말하며 기뻐했다. 몇몇 출연작들이 칸의 초청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일정이 겹쳐 칸 레드카펫을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는 나홍진 감독의 힘을 제대로 느꼈다고 했다.

“나 감독은 배우들 안에 있는 모습을 꺼내는 힘이 정말 굉장해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여태껏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리고 좋은 감독은 아역배우들을 잘 지도하죠. 효진 역할의 김환희 양의 연기는 정말 굉장했어요.”

외지인 역할은 영화 속 어떤 캐릭터보다도 모호하고 복잡했기에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쿠니무라는 엔딩부터 역으로 계산해가며 본인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외지인이 나타나고 난 후 발생하는 소문의 불확실성이나 모호함이에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외지인이 어쩌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의식해 가며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갔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줬어요. 혼랍스럽게 하려고요. 그러면서도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죠.”

다음에도 제안이 들어온다면 나홍진 감독과 함께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얼마든지. 단, 체력이 허락하는 선에서”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 열정적인 한국 관객들 부러워

“나홍진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적어도 영화판 안에서 만큼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 시스템을 처음 경험한 그에게 일본의 시스템과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달라고 했다. 

평소 촬영장에서 모니터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그는 매신 촬영할 때마다 감독과 배우들이 모니터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판에서 권력자로 군림하는 한국 감독들의 힘에 주목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많은 회의를 거쳐 정말 고심 끝에 찍는 걸 보고 한국의 시스템은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고요. 촬영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었지만, 이렇게 결과물이 잘 나온 걸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카메라 앞에 서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일본의 영화도 애정을 가지고 봐 주셨으면 좋겠단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부러운 점은 한국 관객들은 영화란 장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거죠. 일본 관객들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영화 현장에는 아무래도 나홍진 감독 같은 ‘권력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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