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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내재된 본성…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입력 : 2016-05-12 20:51:07 수정 : 2016-05-12 2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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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종의 기원’ 낸 정유정 악인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소설가 정유정(50)이 3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어느 한 쪽을 선뜻 지지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라는 종의 과학적인 실체와 그 인간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 온 가족이나 사회라는 공동체의 성질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의 최고단계인 포식자 ‘프레데터’를 주인공인 ‘나’로 내세워 연쇄살인에 나선 심리적 배경을 세밀하게 따라가는 이 소설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끝까지 사로잡는다. 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한 영역을 독보적으로 구축해온 ‘정유정표’ 소설답게 한 번 책을 잡으면 쉬 놓지 못할 서사가 긴박하게 흘러간다.

스물여섯살, 수영선수 출신 한유진. 일찍이 그가 정신과의사인 이모로부터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자 어머니는 아들을 간질환자로 속여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유진은 약의 부작용으로 극심한 무기력과 혼돈상태에 빠져 지내다 약을 거부하고 밤의 행각에 나선다. 군도신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한유진이 안개 속에서 첫 살인을 저지른 이후 이를 목격한 어머니마저 살해하는 급박한 국면으로 흘러간다. 어머니의 실종에 의아한 이모가 다시 방문하고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 이모도 한유진의 면도칼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유진의 친구이자 어머니가 입양해 가족처럼 살고 있는 해진도 뒤늦게 범행 전모를 파악하지만 그마저 희생되고 만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한 살 위의 친형 유민과 아버지의 ‘사고사’도 범상치는 않다.

지난해 장편 ‘종의 기원’을 집필하던 남해의 한 펜션에서 만난 소설가 정유정. 그는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사이코패스를 일인칭 ‘나’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집필 과정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과정을 한유진의 시각으로 그려낸 정유정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를 쓴 게 아니라 이야기를 쓴 것”이라면서 “추리는 범인을 찾는 과정이고 스릴러의 목적은 생존인데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어떤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따라간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사이코패스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는 많지 않다”면서 “사이코패스를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숨어있는 그들을 간접체험함으로써 삶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백신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를 인용하며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며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살인’은 피할 수 없는 도구였다는 시각이다. 그러니 악은 우리 안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라는 것이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설 속에서 포식자 한유진이 정신과 의사인 이모를 죽이기 전 하는 말.

“전화해서 경찰한테 다 말해요. 16년 전, 열 살짜리 사이코패스의 치료를 맡았고, 그간 간질 환자라 속여 정체불명의 약을 먹여왔고, 제 엄마를 앞세워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면서 죽도록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죽자고 막아놨더니,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헤까닥 돌아서 제 엄마를 죽이고, 이제 나까지 죽일 참이라고…”

유진이 하는 말들이나 그가 스스로 들여다보는 자신의 심리 상태는 소설을 따라가는 독자들을 자주 혼돈에 빠뜨린다. 설득력이 없지 않을뿐더러 연민까지 생기는 것을 억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작가가 공들여 창작해낸 정서일 터이다. 선과 악은 종잇장 한 장 차이만큼 미세한 경계에 놓인 것이라고, 도덕이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갓 치장일 뿐인지 모른다고. 인간들 중 2~3퍼센트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타고 난다고 한다. 비둘기의 세상에 매 한두 마리는 있어야 그 사회가 긴장을 유지하며 오래 존속될 수 있다고 믿는 진화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정유정도 동조하는 듯하다.

3년 집필기간 동안 3번씩이나 전체 틀을 엎어가며 작중 인물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정씨는 수영선수 출신인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 수영도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수영장에서 고급반 반장까지 하고 있노라며 웃었다. 소설 속에서 포식자는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라고 부르짖는다. 그는 장애물경기를 하듯 난관을 돌파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과연 그가 다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작가는 썼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종이 분명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전율을 일으킨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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