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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문화 생활'과 멀어지는 한국인들

입력 : 2016-05-10 19:28:05 수정 : 2016-05-10 19: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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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문화격차 현주소 / 소득·연령·사는 곳 따라 공연관람 극명… ‘문화권’ 신장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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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종로구에 사는 신모(50)씨는 지난해 공연 관람에 2500만원을 썼다. 국내 공연만 한정해서다. 휴가철 공연을 보기 위해 독일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등을 방문하고 주말에 틈틈이 일본에 간 것까지 합하면 연간 문화 지출액만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의 연봉이다. 그는 10살 때부터 공연장 나들이를 하며 클래식 음악과 가까워졌다. 공연을 즐긴 외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다녔다. ‘취향’이라는 무형의 유산과 경제력을 가진 그는 우리 사회의 ‘문화 귀족’이다. 신씨는 “운이 좋았다”고 한다. 유복한 환경이 뒷받침됐고 사교육비나 아파트 대출에 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30대 후반 김모씨는 일종의 ‘문화 개미’다. 그는 지난해 평균 사흘에 한 번 꼴로 공연장을 찾았다. 출판계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지만 야근을 요리조리 피하고 주말을 활용했다. 들어간 비용은 전체 수입의 10∼20%. 그는 “박리다매로 많이 간다”며 “저렴한 좌석이나 할인혜택을 이용하면 평범한 직장인 연봉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술·담배를 안 하는 미혼이어서 가능하기도 하다. 클래식, 연극, 무용 등을 즐긴 지는 6년쯤 됐다. 이유는 “그냥 좋으니까”다.


시골 마을 작은영화관에서 주민들이 3D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자료사진
#2. 충북 단양군의 외진 시골에 사는 이모(68)씨는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는 해가 부지기수다. 영화관까지 차로 30분이나 가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안 봐도 아쉽지 않다. 평생 고향에서 산 그는 영화니 공연이니 일체 모르고 자랐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시간은 월요일 오후 10시. KBS에서 ‘가요무대’가 나오면 베개를 끌고 와 TV 앞에 앉는다. ‘고향역∼’ 하고 흘러간 노래를 따라부르노라면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34살 동갑내기 맞벌이 부부 김모씨도 영화관에 갈 엄두를 못 낸다. 한때 ‘시네필’을 자부했지만, 충북 청주에서 양가 도움 없이 2살, 5살 자녀를 키우니 문화생활을 위한 외출은 언감생심이다. 통신사에서 매년 제공하는 영화관람 혜택도 고스란히 날리곤 한다. 공룡에 빠진 첫째를 위해 올해 초 ‘굿다이노’를 본 게 가장 최근의 영화관 나들이였다.

네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 ‘문화 격차’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화 격차는 소득, 연령, 사는 곳에 따라 문화를 즐기고 참여하는 정도가 차이 나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사회는 문화를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문화생활은 여전히 사치재로 인식된다. 잦은 야근과 경제 양극화로 돈과 시간이 부족하고 문화를 즐겨온 경험도 적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공평한 문화 향유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정부의 문화 향수 실태조사는 우리 현실을 잘 드러낸다. 이 조사는 전국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2년마다 이뤄진다. 문화를 즐기는 정도는 소득에서 가장 크게 갈렸다. 2014년 기준으로 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조사 대상자 중 연극과 뮤지컬을 본 비율은 각각 24.2%, 25.8%였다. 반면 소득 100만원 미만인 경우 이 수치는 3.9%, 2.4%에 불과했다. 100만∼200만원을 버는 응답자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만원 안팎이면 볼 수 있는 영화도 이들에게는 사치였다. 소득 100만원 미만인 이들이 영화를 직접 관람한 비율은 17.7%, 100만∼200만원인 경우는 34.4%에 불과했다. 소득 600만원 이상과 100만원 미만인 응답자들은 미술 관람률 18.9% 대 5.2%, 서양음악 13.1% 대 1.8%, 대중음악 22.6% 대 5.2%로 모든 장르에서 편차를 보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한국 부자 보고서(Korean Wealth Report)’에서도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연구소가 지난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 10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매월 문화와 레저에 쓴 비용은 117만원에 달했다. 통계청 가계 지출 조사에서 일반 가정이 쓴 금액(15만4000원)보다 7배 이상 많다. 앞으로 문화·레저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자도 36%였다. 부유층의 문화·레저 지출은 2013년 85만원, 2014년 96만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 연구소 이수영 수석연구원은 “조사 대상 부유층 중 기업 경영자나 자영업자의 문화·레저 지출액이 컸다”며 “이들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일반인보다 여가가 많아 이런 현상이 나타난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또 “부를 일구고 유지·계승하는 데 커뮤니티나 인맥관리가 중요하다 보니 이들은 골프나 문화예술 관람에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득과 함께 거주지도 문화 향유에 영향을 미쳤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서울에 집중된 현실에서는 필연적인 결과다. 뮤지컬계 관계자는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서울에서는 두세 달씩 공연하지만 지방 일정은 주말에 짧게 이틀을 잡는 게 일반적”이라며 “공연이 활성화된 대구 정도가 예외적으로 ‘캣츠’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등을 한 달 안팎으로 장기공연한다”고 설명했다. ‘문화개미’ 김씨 역시 공연을 자주 볼 수 있는 요인으로 “서울에 살고 고정 수입과 할인혜택을 챙기는 정보력을 갖춘 점”을 들며 “이직 과정에서 지방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취미생활을 생각하니 못 내려가겠더라”고 전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니버셜발레단 `백조의 호수`
야근에 탈진한 직장인, 전투하듯 육아하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시간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장애인에게도 공연·전시의 문턱은 높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 역시 중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삶의 질을 높이려면 반드시 문화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양혜원 연구원은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는 개념이 문화권”이라며 “유엔인권협약부터 문화권을 인정해 왔고 우리 역시 2013년 12월 문화기본법을 만들어 국가와 지자체가 문화권을 보장할 의무를 규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문화예술은 많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필수재”라며 “최소한의 문화예술조차 누리지 못하는 국민이 여전히 많기에 국가가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기조에 맞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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