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20번의 주인공…①홍명보, 월드컵 4회연속-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한국축구에서 홍명보(1969년 2월 12일)만큼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보는 이는 없다. 특히 2002월드컵 4강을 확정짓는 승부차기 골을 넣고 두손을 펼친 채 '천국을 본 듯'한 환희에 찬 미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홍명보에 대해선 4-4만 이야기하면 상황이 종료된다.
월드컵 본선 4회연속 출전과 월드컵 4강이다.
홍명보의 월드컵 4회연속 출전(1990-1994-1998-2002)은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이부문 세계기록은 5회연속 출전으로 이탈리아의 지안루이지 부폰(1998-2002-2006-2010-2014), 멕시코의 안토니오 카바잘(1950-1954-1958-1962-1966),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1982-1986-1990-1994-1998)등 3명이 갖고 있다.
월드컵은 축구의 최고무대로 각국 최고선수만이 출전할 수 있다. 4년연속 출전했다는 것은 최소한 12년간 최고선수였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한국 2002월드컵 4강 신화에서 홍명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44'에 한국선수 중 A매치 최다출전(136경기)라는 기록을 덤으로 올려놓는다면 그 화려한 만큼은 아직까지 홍명보를 능가하는 이는 없다.

△카리스마 그 자체
홍명보하면 많은 이들은 '영원한 캡틴(주장)'을 먼저 떠 올린다.
사실 홍명보가 주장 완장을 찬 것은 1998프랑스월드컵부터 2002월드컵까지 4년여 동안이다.
하지만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을까.
2002월드컵 4강팀 주장이라는 메리트와 함께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이다.
홍명보의 선수 장악력은 대단하다. 눈빛에서 불빛이 번쩍하고 난다. 말도 길게 하지 않는다. 달변은 아니지만 툭 툭 던지는 한마디에 선수들은 모두 하나가 된다.
홍명보의 카리스마를 1994년 봄 미국월드컵 대표팀이 시절, 상무와 연습경기때 확인했다.
당시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동대문운동장을 찾았다. 홍명보는 미드필더에서 상무 선수의 볼을 뺏기 위해 슬라이딩을 좀 깊숙히 들어갔다.
슬라이딩에 쓰러진 상무 선수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쓰면서 혼잣말로 '에잇'하며 욕을 했다.
미안하다며 손을 잡아주려던 홍명보는 이를 보고 "뭐야 지금"이라며 눈을 부릎떴다. 깜짝놀란 상무선수는 용수철처럼 일어나 도리혀 고개를 숙였다. 쓰러진 선수가 홍명보의 학교 후배도 아니었지만 분위기, 즉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러한 포스는 선수생활 내내 간직하고 다녔다.
△ 또래보다 작고 약했던 홍명보, 캐논슈터로 대표팀에 발탁 돼…최후방서 전방으로 한번에 보내는 화려한 플레이는 천하일품
홍명보는 서울 광장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때는 물론이고 광희중에 입학했어도 또래보다 키가 작고 약해 '축구선수로 대성할까'라며 회의적 시선을 보낸
이가 많았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자라는 집안 내력도 있지만 이른바 빠른 1969년생 탓도 있다.
고려대 1987학번인 홍명보 또래는 대부분 1968년생 들이었다. 홍명보보다 6개월에서 1년가량 나이가 많았다.
성장기의 한살차이는 대단하다. 6개월만 차이나도 체격과 힘 차이를 느낄 정도이다.
이런 열세를 딛고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까닭에 홍명보는 동북고 1년때 168cm였던 키가 이듬해 178cm, 곧 180cm를 넘어서게 됐다.
축구선수로서 홍명보의 특징을 꼽으라면 경기를 보는 머리와 시야, 그리고 킥력이다.
중고시절 미드필더를 맡았던 홍명보는 고려대에 진학 한 뒤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수비수를 오르내리다가 3학년부터 중앙 수비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경기보는 시야가 넓었고 킥력이 좋아 곧잘 공격에 가담했으며 팀의 프리킥을 도맡아 찼다. 30m짜리 프리킥도 가볍게 골로 연결시켰다.
홍명보의 킥에 반한 1990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의 이회택 감독은 주위의 부추김에 못이기는 척 1990년 초 건국대생 황선홍과 함께 홍명보를 대표팀에 깜짝 발탁했다.
당시 대표팀은 강팀과 싸워 승부를 보려면 미드필드에서 최대한 버틴 뒤 역습때 나온 찬스를 놓치지 말자는 전략을 세웠다.
이회택 감독은 홍명보의 킥력과 정확성을 이용해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장거리 패스를 때리도록 주문했다.
이를 위해 당시 유행하던 3-5-2시스템의 중앙 수비수, 즉 스위퍼(상대 공격을 마지막으로 차단, 쓸어 버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포지션 별칭)로 그를 배치했다.
홍명보 동료들도 한결같이 "홍명보, 볼줄(공이 뻗어나가는 모습)이 좋은 선수"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킥력은 탁월했다.
사실 홍명보는 빠른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영리하다.
상대가 어느쪽으로 볼을 줄지 미리 계산해 최단거리로 이동하고 가장 적절한 시점에 나타나 볼을 끊은 뒤 곧장 '쭉'하고 자기편 스트라이커 쪽으로 패스, 골로 연결하게 만든다.
또 상대 공격을 툭하고 차단한 뒤 볼을 치고 들어가 슈팅까지 날리고 들어온다.
이런 시원하고 통쾌한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이런 맛에 사람들과 축구인들은 홍명보 플레이를 잊지 못하고 '영원한 리베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홍명보 기록
*월드컵 4회연속 출전, 본선 16경기 출전, 94월드컵 2골 1도움
*A매치 136경기 출전 10골
*K리그 156경기 출전 14골
*J리그 114경기 출전 7골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38경기 출전
*90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런던올림픽감독, 2014브라질월드컵 감독, 황저우 그린타운 감독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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