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수 교수 ‘세종 공법’ 펴내 재위 9년 세종은 과거 응시자들에게 물었다. “공법(貢法: 조선 전기 토지에 대한 세금제)을 사용하면서 이른바 좋지 못한 점을 고치려고 한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듬해 세종은 황희와 함께 공법을 처음 논의했다. 이후 17년간 조정 대신들과 뜨거운 논쟁을 벌이며 제도를 수정, 보완하며 완성해 갔다. 놀라운 점은 공법 시행을 위해 오늘날 국민투표에 가까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재위 12년 세종은 양반은 물론 전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공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도록 했다. 17만2806명이 참여했고 찬성은 9만8657명, 반대는 7만4149명이었다. 당시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지닌 성인 인구가 69만2477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인구의 25% 정도한 참여한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분6등법’이다. 토지를 질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고, 각 등급에 맞추어 세금을 부과한 제도다. 작황에 따라 차이를 두는 ‘연분9등법’도 도출됐다. 부정부패가 없고 간편하며 무엇보다 공평한 세법을 만들기 위한 세종의 노력이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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