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에서의 상생과 평화’를 주제로 한 포럼 주제발표는 김종서 서울대 부총장 겸 대학원장(종교학)이 맡았고, 지정토론은 한만수 국제기독교언어문화연구원장과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이 지정토론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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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에서의 상생과 평화' 포럼 현수막. |
김 부총장은 “다문화 사회는 각각의 문화들 간에 필연적으로 충돌로 인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혼인과 체류 및 임금체불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종교 등 문화적으로 더 얽혀 갈등 요인이 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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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서울대 부총장(오른쪽)이 '다문화 사회에서의 상생과 평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그 왼쪽으로 김재완 글로벌문화포럼 공인동인회 회장, 한만수 국제기독언어문화연구원장,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 |
반면‘다문화주의’는 이주민들의 고유문화를 인정함으로써 일방적인 동화가 아닌 집단의 공존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이른바 ‘샐러드 보울’(Salad Bowl), ‘인종적 모자이크’(Ethnic Mosaic),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과 같은 다양한 명칭으로 일컬어지는 다문화주의는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문화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풍성한 공존을 목표로 삼는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라눈 물음에 자문자답한 김 부총장은 “대체로 국제적인 추세는 동화주의로부터 점차 다문화주의를 향해 왔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도 “다문화사회로의 진전이 시대적 환경 변화에 따라 불가피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이상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문화주의가 항상 옳은 것으로 공동체의 모든 성원이 추구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다문화주의에 기초한 다문화사회는 이주민들의 적응과 통합을 도모함으로써 상호공존 즉 상생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급격한 다문화주의로의 전환이나 지나친 다문화주의의 강조는 오히려 내부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동화를 기반으로 하는 단일문화주의의 ‘단일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배타적이 되고, 다문화주의에서 ‘소수자의 정체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분리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는 것. 즉,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 혹은 인종 집단의 평화적 상호공존이라는 이상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도외시한 극단적이고 이상주의적 다문화주의의 추구는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각각의 사회마다 상황을 고려하면서 적절히 균형 잡힌 동화주의/다문화주의의 모델을 나름대로 창조해 나가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부총장은 종교학자답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품격의 정서인 동류의식이 기대를 걸었다.
“식물은 물론 돌 같은 무생물에까지 동류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윤리적 진화의 최고봉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으로, 동류의식을 전혀 못 느껴서 남과 싸우고 갈등하는 사람은 그만큼 윤리적으로 진화가 안 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다른 문화를 우리와 같은 문화의 범주 속에서 인식하는 동류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이야기지만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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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행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이 글로벌문화포럼 총평과 공인동인회에서 펴낸 '한국정신문화의 세계화를 위하여'(한누리미디어)에 대한 서평을 하고있다. |
한 원장은 “인간은 윤리적 외로움과 윤리적 편안함, 그리고 복리적 희락을 추구하는 존재”라면서 이를 위해선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다양성 있는 통합성을 이룩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토론자인 조정진 논설위원은 최근 서울대에서 있었던 수업 중 종교 행위를 제지당한 이슬람권 유학생들의 교수 협박 사건과 동남아 결혼이주여성의 폭행 치사 사건, 임금 체불, 부실한 탈북자 정착 지원 등을 거론 한 뒤 “5000년 이상 ‘단일민족’ 체제를 유지하다 졸지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아직은 새로 편입한 다문화 구성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더불어 사는 ‘상생’이 안 이루어졌고 모두가 바라는 ‘평화(平和)’도 오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다음은 조 논설위원의 토론문 요약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다문화 사회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다. 가정연합이 50년여 동안 결혼시킨 전 세계 36만여 쌍 중 한·일 가정이 1만5000여 쌍, 한·필리핀 가정이 5000여 쌍이나 된다. 종교적 신념으로 교차결혼을 수용한 젊은이들이 국적이 다른 배우자와 다문화 가정을 이룬 것이다. 충남 부여 등의 문화관광해설사와 학원가의 일본어 강사 중엔 상당수가 이때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여성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이고 자발적인 결혼을 통한 이주였기 때문에 생활고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종교와 피부색이 같고, 역사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언어도 금세 습득이 돼 크게 사회문제로 비화하지 않았다.
그 후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외국의 젊은이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들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용산구 이태원에서 맴돌던 외국인들은 신촌 홍익대 앞 클럽을 점령하다시피 진출해 이 일대를 순식간에 국제도시로 만들어버렸다. 이참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 국제변호사 겸 연예인 로버트 할리 등 과거에는 금기시 되던 한국 여자와 외국인 남자와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증가했고, 프랑스인 이사도시를 시작으로 벽안의 외국인 며느리들도 줄줄이 국내에 둥지를 틀었다.
중국 동포들과 탈북자, 그리고 동남아를 필두로 한 국제결혼이 본격화된 것도 이 즈음이다. 외국인들 대부분이 초기엔 직장을 찾아온 경제적 유민이었지만, 개중에는 결혼과 귀화로 한국인이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행정자치부에 의하면 2016년 3월 현재 국내에 정착한 다문화 가족은 총 82만 명이다.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도 곧 3만 명을 돌파한다. 바야흐로 5000년 동안 폐쇄적 단일민족국가를 지켜오던 한민족이 20여 년이라는 짧은 순간에 다문화 사회로 급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전후해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다인종(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높은 대학 진학률에 따른 사회 진출 확대와 경제적 자립, 골드 미스들의 결혼 회피, 무자녀 풍조 등의 영향이 적잖이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자녀 교육비 증가와 수명 증가로 인한 노인복지 비용 상승과 출산율 저하, 경제성장률 지체로 인한 실질 수입 감소 등도 자녀 출산 기피로 나타났다. 저출산은 급기야 산업 현장의 노동력 부족 사태를 불러왔고, 저개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혼기를 놓친 농촌 총각과 저소득 미혼 남자들이 동남아와 중국 등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국제결혼이 붐을 이루면서 5000년 순혈주의를 고수하던 한국 사회는 급격하게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다문화 가정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 조선족 이외 여타 민족과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들이 성장하면서부터다. 언어가 어눌하고, 피부색에서 차이가 나는 이들 다문화가정 2세는 전통적인 한국 아이들과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전락하거나 도태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연고가 적은 나라보다는 악연이 많은 일본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다문화 가족 82만 명 중 18세 이하 자녀는 2016년 현재 20만 8000여명이다. 2006년(2만5000여명)과 비교해 10년간 8배 증가했다. 24세 이하 중도입국자녀도 해마다 늘어 1만7000명(2012년 기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의 전체 규모는 늘고 있지만 이들은 사회적 편견 등으로 교육, 취업,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의 학업중단율은 1.01%로 전체 학생 학업중단율(0.83%)보다 0.18%포인트 높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15~24세 다문화가족 자녀 중 학교에 다니는 비율은 57.8%에 머물고 있다. 20.3%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중도에 입국한 청소년들은 언어소통 등의 문제로 사회적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이들을 계속 내버려두면 사회적 문제 발생은 물론 국가 통합에도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도 강제하지 않아 토종 한국인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이탈주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럽 등에서 폭넓게 일어나는 종교간 갈등이 우리나라에선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문화 가정은 싫건 좋건, 원하든 부인하든 이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구성원이다. 특히 산업단지와 농어촌이 산재한 농촌에서는 다문화 가족의 비중과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제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털어내고 보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는 물론 사회복지 혜택도 제공돼야 한다.
다문화 사회에 대해 실감이 가지 않으면 8·15 광복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교포들의 삶을 떠올려 보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일교포들은 여전히 일본 내에서 비주류이고, 이방인이다. 오랫동안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제한받았으며 외국인 지문 날인이라는 비인간적인 대우도 받았다. 일본에 귀화하지 않아 치르는 대가다.
1960년대 조총련과 일본적십자사에 속아 북송선을 탔던 재일교포와 일본인 처들의 북한에서의 삶 또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조총련과 북한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여 데려가 그들을 인질로 삼아 수십 년 동안 대북송금을 갈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별반 다르지 않다. 구로에 자리 잡은 중국인거리는 그들 나름의 이방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끼리 모여 그들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동화나 습합이 아닌,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시대를 거론하지만 대한민국에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도래는 아직 멀었다. 오래 굳어진 생활양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절대적인 세월에 체계적인 교육과 양질의 일자리, 그리고 토종 한국인과의 결혼 등으로 교차결혼을 해야 비로소 동화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한국에 귀화한 일본인 무장 김충선(金忠善, 1571~1642) 사례를 보자. 그는 1592년(선조25)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내침하였으나 조선의 문물이 뛰어남을 흠모하여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지하는 군령을 내리고, 조선 백성에게는 침략할 뜻이 없음을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돌렸다. 명분 없는 조선 침략에 불만을 품었던 까닭이다.
이어 휘하 병졸 500명과 함께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하였다. 그 후 조총 제조법을 전수하고 누차 큰 공을 세워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의 주청으로 김해김씨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임금이 하사한 성씨라고 해서 사성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라고 부른다.
그 후 지금까지 누구도 김충선과 사성김해김씨 일가를 귀화 일본인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덕분이다. 영화배우를 거쳐 국회의원이 된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 의원과 북한이탈주민 출신 조명철 의원도 대한민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는 종교 간 갈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종교다원주의를 신뢰하는 국민성과 전통종교인 무속과 유교, 불교, 가톨릭, 기독교 등이 황금비율로 균형 있게 성장한 덕분이다. 종교의 배타성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종교적 관용이다.
다문화 사회, 국가 통합의 이념적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국조 단군이 제시한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이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교육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뜻으로 민주주의 기본정신과 완전히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모든 인류의 이상이다.
홍익인간사상의 신인(神人)합일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즉 인간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조화로운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또한 홍익인간사상의 한사상과 천지인 사상은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가 가능함을 함의하고 있다. 다양성과 통합이 가능한 것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상생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홍익인간 사상은 평등과 평화의 원리를 통해 다양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계와 차별, 분리와 배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즉 공평과 평등의 원리야말로 형평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홍익인간사상은 다문화주의의 모순을 보완할 뿐 아니라 한국적 다문화주의를 위한 철학적·정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
김종서 교수의 발제문 ‘다문화 사회의 상생과 평화’에서 밝힌 ‘다문화주의’는 홍익인간사상과 일맥상통한다. 굳이 외국 철학사상이나 사회학 이론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다문화 사회의 이념적 대안은 홍익인간사상과 함께 단군이 개국 철학으로 천명한 재세이화(在世理化·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려 교화한다), 이도여치(以道與治·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광명이세(光明理世·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의 3원칙이다.
우리 조상은 이처럼 도덕과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고, 진리로 세상을 계몽하며, 세상에서 진리가 구현되기를 염원했다. 한 역사학도는 “진리의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꿈은 인류의 기원이 하느님이라는 것과 한민족이 그런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위해 살아가라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다”고 해석했다.
이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국가이념에 천부인권을 천명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유, 평등, 국민 주권 확립을 표방한 미국 독립선언문(1776년)보다 4000년 전에 이 땅에서 불거져 나온 인류 보편의 통치이념이다. 공자나 석가모니보다 1800년 앞서 인류 보편의 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 윤리, 동류의식의 진화?확대가 아닌 이미 개국 때 표명한 셈이다.
어떤 사상, 어떤 이데올로기도 한반도에 유입되면 종합되고 재창조된다. 먼 나라, 낯선 민족도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그들은 한민족에 동화된다. 우리 민족이 품은 위대한 포용력이자 저력이다. 드디어 개국 때 이미 사해동포주의를 표방한 한민족이 세계사에 우뚝 나설 때가 됐다. 다문화 사회의 도래는 결국 한민족 웅비의 다른 이름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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