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는 쓴 지 10년 넘었는데 갑자기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고 그 책이 변한 것도 아니고 제가 변한 것도 아니어서 담담한 편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그 삶의 시기 동안 저의 시간과 감각과 몸을 죽은 소년에게 빌려드려 제가 썼다기보다는 소년이 쓴 거나 마찬가지여서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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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영미권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소설가 한강. 파리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 서울 양재역 인근에서 만난 그는 “좋은 번역자와 출판사를 만난다면 다른 국내 작가들도 충분히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유달리 폭력에 민감한 편입니다. 아우슈비츠 학살을 다룬 영화를 볼 때마다 토하거나 아프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 같은 소설도 쓴 것이고, 폭력에 대해 민감한 무의식을 파고들다가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거지요. 저에게는 개인적 주제와 사회적 맥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따라가다 보니 사회적 주제와 만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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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강의 ‘채식주의자(왼쪽)’ 와 ‘소년이 온다’ 표지. |
한강은 광주시에서 태어나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 열한 살 때 서울로 이사왔다. 후일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 사진첩’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그네의 감성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네들만 참극을 피해 도망온 듯한 부채의식에도 시달렸다. 그러한 감정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폭력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무의식에 깊이 새긴 듯하다. 그네의 아버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소설가 한승원. 한국 문단에 소설가 부녀는 더러 있지만 대를 이어 ‘이상문학상’을 받은 이들 부녀처럼 또렷한 경우도 드물다. 이즈음은 아버지 세대를 넘어서서 딸이 글로벌 작가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밤에는 소설 쓰느라 잠을 못 주무시고 낮에는 교사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언제나 피곤한 모습이셨어요. 그런 모습를 보면서 성장한 저로서는 어릴 때 작가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피곤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사춘기 접어드는 중학교 때부터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지부터 제 안에 너무 많은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집 안에 널려 있는 책들을 보면서 살았는데 이때부터는 필사적으로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작품들을 읽었어요. 읽다 보니 작가들에게도 별다른 답이 없고 오히려 저처럼 연약하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했다. 대학 문학상에 시를 응모해 상을 받기도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시 쓰는 학생이었지만 안으로는 몰래 소설을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1993년 겨울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이 되었고 곧바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는 소설가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그가 몰두해온 장르는 소설이었다. 그네의 소설들은 초기작부터 깊은 물속에서 힘겹게 숨을 참는 듯한 낮고 어두운 풍경이었다.
“저에게는 언제나, 지금까지도 해결 안 된 문제들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고통받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는데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건지, 내가 가벼워도 되는 건지 그런 확신이 없어요. 살아 있는 건 잠깐인데 아름다운 걸 봐야지 하는 건 30대 중반 지나면서 든 생각이고, 20대 초중반에는 더더욱 내가 행복할 수 있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것도 생각해보면 광주와 연관이 된 건지 모르지요.”
한강의 소설들은 어둠 속에서 한 점 빛을 향해 안간힘으로 쓰며 기어나온 기록으로도 읽힌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주인공이 자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밝혀나가며 불타는 공간에서 기를 쓰고 기어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썼다. 장편을 하나씩 써나가면서 느리지만 생에 대한 긍정과 인간의 존엄을 찾아가는 도정을 걸어왔다. ‘희랍어 시간’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무엇을 통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좀 더 가본 것”이라고 그네는 말했다.

말미에 죽은 소년이 엄마 손을 이끌고 빛을 향해 나아가거니와 한강은 “제 힘으로 쓴 게 아니라 그분들이 끌고 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희랍어 시간’이 시적인 밝음을 향해 나아갔다면 비로소 가장 어두운 부분을 통과하며 깊은 곳에서 강렬하게 올라오는 두터운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제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빛 속에서 어둠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 독자들까지 주목하기 시작한 한강의 소설은 다시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갈까.
“어디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움직였다기보다는 저에게 가장 절박한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답을 내기보다 질문을 완성해보려고 써왔습니다. 간절한 이야기를 쓰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데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그때 근근이 한 치 앞을 모르고 나아갈 뿐이지요.”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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