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질적 정체에 빠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평가방식에 쫓기다 보니 모험적 연구를 기피하고 2∼3년 내 실적을 내는 데 집착하게 된다는 지적이 많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해 공개한 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에 따르면 질적 성과라 할 수 있는 기업간기술협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2위에 그쳤다. SCI(과학인용색인) 논문 피인용도는 29위로 더욱 초라한 성적이다. 정부가 연간 19조원의 R&D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나 선도적인 연구결과나 원천기술은 확보된 게 없다. 자연과학분야의 세계 석학들이 얼마 전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연구경쟁력을 진단해 내놓은 보고서도 모험적인 연구보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고 남이 이뤄 놓은 기존 연구를 답습하는 행태를 지적한 바 있다.
지금과 같은 연구개발 환경에서 노벨상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 R&D 지원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정부 연구사업 상당수가 과학자가 아닌 관료가 주제를 선정한 뒤 발주하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 관료들은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기 성과가 나올 만한 과제를 선정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기초과학 R&D를 지원하는 에너지부의 연구과제는 10년이 넘는 게 수두룩하다. 미 에너지부는 교수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해 R&D 연구기관을 주기별로 방문해 협의하고 점검한다. 의혹을 피하려고 가급적 여러 대학의 많은 연구자를 참여시켜 연구비를 갈라주는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미래전략 분야를 장기간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역할은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그치고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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