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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2번째 대국을 마친 뒤 신중한 표정으로 복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백22는 두터움에 비중을 둔 선택. 흑23∼백28로 흑은 실리를, 백은 두터움을 챙기는 타협이 이뤄졌다. 이 9단은 전날 초중반 전투에서 알파고가 보였던 파괴력을 감안해 안정 위주의 국면 운영을 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백22로 23 자리에 이어 178 자리를 선점하는 일련의 정석 과정을 거쳤으면 어땠을지 아쉬움도 남았다. 이 9단이 그 길로 달려갔다면 우하귀 흑 석점은 약한 말이 됐을 것이고, 2국은 실전과는 전혀 다른 한 판의 바둑이 됐을 것이다. 선수를 잡은 알파고는 흑29를 택했다. 이로써 알파고가 우하귀에서 노출한 이상감각을 백이 응징할 기회는 사라졌다.
흑37은 “저게 뭐냐”는 프로기사들의 반응을 부른 수. 유 9단은 “독특한 수”라고 했다. 백에게 4선으로 실리를 다질 기회를 헌납했으니 이 역시 호평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9단은 백38로 밀어 두터움을 택했다.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백 모양이 중복되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절충이 계속 이어졌다. 알파고는 첨단 유행과 담을 쌓은 듯한 이상감각의 수를 천연덕스럽게 뒀고, 이 9단은 응징에 나서는 대신 안전 운행을 계속했다.
문제는 그 총체적 결과가 이 9단에게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행을 거부한, 혹은 모르는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백은 흑43∼백56의 1차 승부처에서 분명히 재미를 봤고, 그 이후로도 대체로 실점보다는 득점을 하는 인상을 줬지만 중후반 이후 속절없이 흑에 밀리고 말았다. 특히 흑157∼165의 끝내기가 압권. 이런 수순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9단은 일찍이 변화를 구했을 것이다. 이 9단을 응원하던 일부 정상급 기사들은 이 9단이 백98로 99의 곳을 이어 버티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승현 논설위원 tral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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