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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상 감각’… 이 9단 안전운행 치중하다 응징 못해

입력 : 2016-03-10 21:51:08 수정 : 2016-03-10 21: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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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 승리한 알파고 첨단 유행은 패션 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둑에도 있다. 정석, 행마에도 다 유행의 물결이 있고, 세월에 따른 유행의 부침도 있다. 그런데, 그런 유행은 과연 군말 없이 따를 만한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에 나선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에게 묵중하게 던진 질문이다. 이 9단은 전날 1국에 이어 10일 2국에서도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이 1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2번째 대국을 마친 뒤 신중한 표정으로 복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알파고는 우하귀에서 평이한 소목 정석을 진행하던 도중 먹잇감을 발견한 까치처럼 갑자기 날아 상변으로 향했다. 흑11 다음에 흑13으로 선회해 ‘중국식 포석’을 펼친 것이다. 인간 고수는 이렇게 두지 않는다. 흑11과 백12를 교환한 채로 손을 빼는 것은 흑의 몸집이 무거워져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상변에 두고 싶다면 교환 없이 가는 것이 프로기사의 유행 감각이다. 기왕에 흑11·백12가 교환됐다면 흑은 207의 자리를 점하는 것이 순리에 가깝다. 이날 포시즌스 호텔에서 공개해설한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 유창혁 9단도 흑의 수순에 대해 “상식적으론 이상감각”이라 평했다. 만약 전날 알파고가 이기지 않았다면 ‘상식적으론’이란 군더더기도 붙지 않았을 것이다.

알파고의 이상감각은 흑11·13 이후 줄줄이 튀어나왔다. 흑15·백16의 교환부터 매우 괴이했다. 이런 교환은 먼저 69 정도로 뛰어 백의 반응을 살핀 뒤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리(棋理)에 부합한다. 알파고는 도시 물정을 전혀 모르는 시골 노인처럼 어리숙하게 행동했다. 유 9단은 “사람이 뒀다면 상당히 약하다고 했을 것”이라 촌평했다. 흑17도 호평을 얻기 어려웠다. 큰 곳이 많은 초반에 작은 곳에 연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백22는 두터움에 비중을 둔 선택. 흑23∼백28로 흑은 실리를, 백은 두터움을 챙기는 타협이 이뤄졌다. 이 9단은 전날 초중반 전투에서 알파고가 보였던 파괴력을 감안해 안정 위주의 국면 운영을 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백22로 23 자리에 이어 178 자리를 선점하는 일련의 정석 과정을 거쳤으면 어땠을지 아쉬움도 남았다. 이 9단이 그 길로 달려갔다면 우하귀 흑 석점은 약한 말이 됐을 것이고, 2국은 실전과는 전혀 다른 한 판의 바둑이 됐을 것이다. 선수를 잡은 알파고는 흑29를 택했다. 이로써 알파고가 우하귀에서 노출한 이상감각을 백이 응징할 기회는 사라졌다.

흑37은 “저게 뭐냐”는 프로기사들의 반응을 부른 수. 유 9단은 “독특한 수”라고 했다. 백에게 4선으로 실리를 다질 기회를 헌납했으니 이 역시 호평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9단은 백38로 밀어 두터움을 택했다.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백 모양이 중복되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절충이 계속 이어졌다. 알파고는 첨단 유행과 담을 쌓은 듯한 이상감각의 수를 천연덕스럽게 뒀고, 이 9단은 응징에 나서는 대신 안전 운행을 계속했다.

문제는 그 총체적 결과가 이 9단에게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행을 거부한, 혹은 모르는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백은 흑43∼백56의 1차 승부처에서 분명히 재미를 봤고, 그 이후로도 대체로 실점보다는 득점을 하는 인상을 줬지만 중후반 이후 속절없이 흑에 밀리고 말았다. 특히 흑157∼165의 끝내기가 압권. 이런 수순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9단은 일찍이 변화를 구했을 것이다. 이 9단을 응원하던 일부 정상급 기사들은 이 9단이 백98로 99의 곳을 이어 버티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승현 논설위원 tral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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