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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 1호’ 시발자동차를 아시나요

입력 : 2016-03-03 20:34:11 수정 : 2016-03-03 22: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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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목록화 조사’ 문화유산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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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 무게 1500㎏, 최고속도 시속 80㎞의 자동차. 이름은 ‘시발’. 발음이 이상하다고 우습게 볼 물건이 아니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모든 한국산 자동차의 ‘할배’ 격인 ‘대한민국 제작 1호차’다. 한자로 ‘始發’(맨 처음 출발 혹은 발차함)이니 뜻이 크다. 시발은 문화재청 의뢰로 2012년 작성된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 ‘문화유산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소장… (박물관에 보관된 것은) 복각 차량이지만 후손 및 관련자들의 고증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만들었기에 가치가 매우 크다”고 소개했다.

‘목록화 조사’는 일종의 ‘미래유산’ 선별작업이다. 문화재로 정해 관리하기에는 아직 시간의 더께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한국의 20·21세기를 증언할 유물이 될 것들을 산업, 건축, 의류, 체육 등 분야별로 미리 조사해 목록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목록에 든 물건들은 한국이 지나온 100년의 시간과 그 시간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19년 전북 이리의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문용기 선생이 입었던 옷. 일제의 탄압으로 생긴 혈흔에서 강렬한 독립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강렬한 독립의 의지 ‘혈의’(血衣)


1919년 4월 4일, 전북 이리의 장터에 30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 참여자들이었고, 문용기는 행렬의 맨 앞에 섰다. 군중이 1000여명으로 늘고, 기세도 오르자 헌병대가 출동했다. 창검과 총, 곤봉을 휘두르는 무차별 진압에 사상자가 속출했으나 문용기를 막지는 못했다. 헌병의 칼에 두 팔을 베이면서도 그는 만세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가 당시 입었던 옷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전한다. 문용기의 며느리가 기증해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옷은 “독립운동가의 유물로서 착용자가 확실하고,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된다.

경남 진해의 이순신 동상은 6·25전쟁 중 국난 극복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건립됐다. 전국 각지에 있는 이순신 동상의 원조격인 셈이다.
◆6·25-‘이순신 동상의 원조’, 국난극복의 의지


1952년 4월 13일, 전쟁이 한창이던 때 경남 진해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섰다. 높이 4.8m, 폭 1.4m의 청동상. 정면을 바라보며 의식용의 큰 칼을 잡고 있어 절제미와 엄숙함이 느껴졌다. 이순신 동상 건립은 일제강점기에도 추진되었으나 실제 만들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국 각지에 세워져 있는 이순신 동상들의 원조가 진해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인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까지 나서 축사를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던 동상 건립은 국난극복 의지의 표현이었다. 1950년 11월 11일, 해군창설기념행사에서 김성삼 준장이 제안했고, 윤효중 작가가 왕릉의 무석인을 바탕으로 제작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신익희, 안호상, 홍종인 등 정계, 미술계, 학계의 권위자가 참여한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1공화국 때는 외빈들이 오거나 국제적인 반공회의가 있을 때 동상을 찾아 기념촬영을 했고, 진해 군항제가 동상 개막을 축하하며 시작돼 가치가 크다.

◆고도성장기-주력산업의 뿌리 ‘1호’

생산 후 시발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8만환이던 6인승 시발의 가격은 30만환으로 뛰었다. 일부 부잣집 부인들은 계를 만들어 차를 산 뒤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시발투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61년 일제 자동차가 수입되면서 인기는 시들해졌다.

‘국산 1호’란 타이틀은 1975년 즈음 현대자동차에에서 ‘포니1’이 나오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국내 개발의 최초 고유모델’로 국산화율 90%를 달성한 한국형 승용차의 탄생이었다. 1976년 가격은 227만3270원. 1975년 12월에 제작된 5도어 해치백에 1238cc의 4기통 엔진, 수동 4단 변속장치를 탑재한 포니1 한 대가 등록문화재로 올라 있다.

88서울올림픽을 즈음해 한국산 휴대전화 1호가 탄생했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외국 제품을 사다 분해, 결합한 뒤 기술을 익혀 ‘SH-100s 셀룰러 휴대전화’를 만들었다. 1988년 9월 17일 잠실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귀빈 47명에게 선물했고, 이듬해 5월부터 일반에 판매됐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 권양숙 여사 내외와 김정일 위원장이 걸어가는 모습. 당시 권 여사가 입었던 옷은 남북 화해협력기의 한 상징으로 미래 문화유산의 가치를 가진다.
◆남북화해기-정상회담의 한 편에 선 영부인


2000년대 초반 한반도에는 화해·협력의 시대가 극적으로 열렸다. 2000년, 2007년 양쪽 정상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맞잡은 두 손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영부인 이휘호, 권양숙 여사는 바로 곁에서 이 역사적 현장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보고서’는 권 여사가 입었던 ‘로 실크(raw-silk) 슈트’를 “권 여사가 북한 방문 때 착용했던 의상이기에 북한에 많이 피는 진달래꽃을 연상시키는 진달래 색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남북화해의 가장 상징적인 현장 가운데 있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장면을 부각한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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