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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주' 이준익 감독 "욕 들으면 어쩌지, 그래도 할 수 없지"

입력 : 2016-02-28 16:28:15 수정 : 2016-02-28 2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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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참 타고난 이야기꾼이세요. 감히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마냥 고맙지, 뭐.”

늘 이런 식이다. 이준익 감독님과의 인터뷰는. 가볍고 유쾌하다. 그런데 그분의 작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 ‘동주’를 보는 내내 입가에 탄성이 흘렀다. 솔직히 한국영화계에도 이런 작품이 나와 주는 구나 기뻤다. 빤한 전기 영화도 아닌, 그렇다고 가벼운 상업영화도 아닌, 오롯이 윤동주 시인과 그의 절친한 벗 송몽규 님의 영화가 스크린에서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야기꾼 이준익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새삼 고마워졌다.

“허허. 저예산 영화는 처음 도전해보는 거였어.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 ‘러시안 소설’ 신연식 감독 알지? 결코 식지 않는 열정의 문학소년이야.(웃음) 그 작품 못 봤으면 꼭 봐. 그 친구랑 감독조합 워크숍에 갔다가 함께 기차 타고 오는데, 윤동주 시인 얘길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하더라고.(신연식 감독은 제작사 루스이소니도스의 대표이기도 하다) 난 원래 상업영화 감독이라 뭔가 저예산 감독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 상업적 결과물은 늘 스코어에 대한 압박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저예산 영화도 아무나 쓰는 게 아냐. 저예산에 맞는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써야지. 신 감독은 그런 점에서 최적의 작가였고, 초고 써 왔길래 함께 다듬었어.”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 대중이 알고 있는 바는 극히 미미하다. 특히 윤동주 시인과 같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 송몽규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이준익 감독은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야. 우리 사회는 왜 결과만 강요하지? 그런 거 이젠 진부해. 이건 근과거 이야기야. 우리는 워낙 가난했던 시절과 한국전쟁을 거쳐 그 이후부터 계속 성장일로에 결과 중심적으로만 살아왔어. 이제는 성장이 조금 둔화된 상태인데 보다 성숙된 사회로 가는 방법이 뭐냐 생각해봐야 될 때야. 성장을 성숙으로 전환하는 방법 중 하나가 과정의 가치를 아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는 잘 아는데 비해 윤동주란 사람이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알지 못한다는 게 속상했어. 그건 시를 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송몽규는 윤동주의 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인데도 아무도 몰라. 송몽규야 말로 과정은 성숙했으나 결과가 안 좋았던 사람이지. 이젠 그 분의 가치를 알아봐야 할 때가 된 거야.”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그는 제작진,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기 전 윤동주와 송몽규가 잠들어있는 북간도 용정에 다녀왔다. 두 사람의 묘소에 도착했을 때 윤동주 시인의 묘엔 꽃과 편지들이 놓여 있었던 반면, 송몽규의 묘엔 아무 것도 없이 잡초만 무성히 자라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숙연해진 마음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수십억대의 제작비가 드는 대작만 연출해온 감독이 순제작비 5억짜리 시대극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보란듯이 해냈다. “제대로 만들었으면 100억원은 족히 들었을 영화”라는 게 감독의 변. 그는 적은 제작비 때문에 흑백으로 찍어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객들을 그 시대로 소환시키는 효과를 제대로 해냈다고 자평했다.

“자자, ‘멋진 놈’ 강하늘(윤동주 역)군과 ‘저예산계의 송강호’ 박정민(송몽규 역)군을 제외하면 모두 독립영화계에서만 활동해온 배우와 스태프들이야. 자기들이 영화를 만들어온 현장에 소위 이름 좀 알려졌다는 상업영화 감독이 와서 메가폰을 들고 어쩌고 하니 얼마나 꼴 봬기 싫었겠어. 내가 무슨 부잣집 도령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니까. 그런데 말야. 환경은 분명 열악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파이팅 넘치는 거야. 턱도 없는 예산이었지만 그 안에서 무척 자유로웠어. 제작비가 많으면 많을수록 상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오는 괴로움이 워낙 크거든. 나 한 번 은퇴까지 해본 감독이잖아.(웃음) 그런데 이 현장은 그런 부담이 없고 그들 방식에 내가 묻어가면 되니까 너무 행복한거야. 흑백? 난 흑백영화를 보고 영화의 매력을 알았어. 관객들이 좀 답답하고 지루해 할까봐 걱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이 언제나 즐거울 수만 있을까. 이 감독은 이내 자신의 손으로 위대한 시인을 시대와 함께 부활시켜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담감과 책임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허허’ 너털웃음 한 번 짓고 넘겨버리는 것 또한 재주라면 재주였다.



“사실 이런 것도 있어.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상을 제대로 재연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했잖아. 그런데 반대급부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만들었는데 영화가 망해 버리면? 그건 평생 윤동주 시인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된단 얘기도 돼. 그래서 일부러 저예산으로 간 것도 있어. 그렇다고 그 부담감에서 아예 벗어나지는 못했어. 내가 혹시라도 잘못하면 우리나라에서 대역죄인이 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거든. 그런데 왜 했냐고? 뭐 욕 한 번 시원하게 듣고 말지 뭐.(웃음) 그 만큼 이 영화는 꼭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윤동주나 송몽규나 좋은 시대를 타고 났더라면 그런 비극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역시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것 같아 이준익 감독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말인 거냐고.

“분명한 건 이 영화 ‘동주’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데 기여할 거라고 봐. ‘그 시절엔 이렇게 살다간 청춘도 있었어’라고 비교우위를 제시해서 요즘 젊은이들은 참 편하게 산다고 말할 의도는 아니었어. 다만 지금이 그때보단 자신의 꿈이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인 건 맞잖아. 안주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더 정진하란 얘기지. 이 영화는 저예산이라 상업영화처럼 엄청난 볼거리와 스펙터클을 주지는 않아. 그럼에도 난 이 분들의 삶이 어떤 액션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어. 시(詩)라는 정지된 활자로 시각적인 자극을 충족시켜주진 못해도 그 시를 쓴 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울렁거리는 감정으로 지금 내 젊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동주’는 지난 17일 개봉했고, 연일 쏟아지는 입소문과 호평에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터뷰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반말 구어체를 사용한 점 양해 바랍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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