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작중 최강인 산왕공고와의 맞대결서 경기 막판 등부상을 입었다. 그의 출전을 만류하는 안 감독에게 강백호는 이렇게 말했다. 풋내기였지만, 뛰어난 운동능력과 점프력을 앞세워 상대 골밑을 박살냈던 강백호는 부상에도 불구 출전을 감행했고, 결국 버터비터를 꽂아 넣으며 북산의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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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발리볼코리아닷컴> |
삼성화재는 그로저의 믿을 수 없는 ‘원맨쇼’에 힘입어 대한항공을 3-1(25-21 24-26 25-16 25-22)로 누르고 3연패의 늪에서 탈출했다. 승점 3을 챙긴 삼성화재는 승점 48(17승11패)로 3위 대한항공(승점 52, 17승12패)와의 격차를 4로 줄이며 ‘봄배구’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대한항공보다 한 경기를 덜 치렀음을 감안하면 승점 차는 더욱 줄일 수 있다.
사실 경기 시작 30분 전만 해도 삼성화재의 ‘독일 특급’ 괴르기 그로저의 출전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유는 무릎 건염 때문.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그로저의 출전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맡길 생각이다. 워밍업 이후 본인이 뛰겠다고 하면 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패배 시 3위 대한항공과의 승점 차가 최대 10점까지 벌어져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임 감독은 속이 탈법도 했지만, 선수 본인의 의사가 먼저였다.
그로저는 워밍업 후 경기 출전을 감행하는 놀라운 ‘부상 투혼’을 보여줬다. 부상으로 평소보다 못 했느냐? 결코 아니었다. 그로저는 1세트에만 블로킹 1개 포함 10점을 쓸어담으며 팀의 1세트 승리를 이끌었다. 1세트 공격성공률은 무려 90%였다. 2세트에도 8점을 올리긴 했지만, 성공률은 38.89%로 떨어졌다. 자연히 2세트는 대한항공의 차지였다.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던 3세트. 그로저는 다시 혼신의 힘을 다 해 팀을 몰락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그로저는 3세트에 서브 득점 3개 포함 9점(세트 공격성공률 85.71%)을 올리는 그야말로 ‘괴력’을 발휘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삼성화재가 19-12로 앞선 상황에서 공격 뒤 착지하던 김학민이 블로킹하다 내려오는 그로저의 무릎에 부딪혔다. 곧바로 그로저는 코트에 쓰러졌고, 김명진과 교체됐다. 그러나 19-15에서 다시 코트로 돌아온 그로저는 21-15에서 서브에이스를 두 개 연속 작렬시켰다. 불과 몇 분전에 코트에 쓰러졌던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
그로저의 눈물겹고도 경이로운 활약은 4세트에도 이어졌다. 24-22에서 이날 경기를 끝내는 오픈 공격을 포함해 6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끝내 지켜냈다. 이날 그로저의 최종 성적표는 블로킹 2개, 서브에이스 3개 포함 33득점. 공격 성공률은 시즌 평균보다 높은 56%였다. 블로킹 하나만 더 추가했다면 트리플크라운도 달성할 수 있었다.
프로 출범 후 11시즌 동안 봄배구는 물론 모두 챔프전 진출에 성공했던 삼성화재. 올 시즌 그 기록이 깨질 가능성도 높았지만, 팀을 온 몸으로 떠받치는 그로저가 있기에 그 걱정은 잠시 거둬도 될 법하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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