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2014년 4월, 온 나라는 세월호 참사로 떠들썩했다. 당시 나는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40년간 해군에서 근무했기 때문일까. 세월호 사고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복잡해진 생각들을 지우기 위하여 매일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몇 시간씩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비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대형사고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재난 분야의 바이블, 찰스 페로 미 예일대 교수의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접하게 됐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읽고 또 읽고 총 4번을 완독했다. 아니 탐독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각종 사고 유형별 시스템의 상호작용에 따른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에 관한 도서’, 이것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남긴 나의 서평이다.
이후 머릿속에 스며드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 제목 그대로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해결책이었다. 초동조치의 분권화된 조직 정비와 지휘의 집중화, 재난모델별 매뉴얼 작성 및 개선 시스템화,전국 CC(폐쇄회로)TV와 연결시스템 구축 등 원인 분석과 정책 아이디어는 15가지 정도 나왔다. 이 중에 몇 가지는 국민안전처의 정책으로 반영해서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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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
그때는 국민안전처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때인데 왜 재난 예방에 대해 고민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취임 후 각종 정책을 쏟아 냈을 때 일부 직원들은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간부급 직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란 문구를 써서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해답을 찾으란 뜻에서 말이다.
이 책에서 페로 교수는 현대사회의 재난을 ‘정상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분석했다. 사고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정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다. 보통사람들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나 판단 오류가 복잡한 시스템과 결합되어 재난이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재난 안전관리를 총괄 조정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각종 재난을 접하면서 이 책에서 제시한 아이디어들이 운명적으로 내게 다가온 이유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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