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이메일에 기밀 없었다" 진화 안간힘…트럼프 "정말 이기고 싶다"
크루즈 "다시 속지말자" 예측불허의 '초접전'에 후보들 심야까지 총력전

미국 대선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의 전야인 31일(현지시간) 오후 7시30분. 아이오와 주(州) 주도 디모인 그랜드뷰 대학의 농구장은 순식간에 떠나갈듯한 함성으로 요동쳤다.
"버니! 버니! 버니!"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피 말리는 접전을 펼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 등장한 것.
농구장을 가득 메운 1천700여 명의 지지자들은 샌더스 의원의 이름을 외치고 피켓을 흔들며 환호로 그를 맞았다.
클린턴 전 장관 등의 유세장과 달리 젊은 남녀 대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주부와 노인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많은 이들이 샌더스 의원의 사진이 인쇄됐거나 '버니'라는 글자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저마다 샌더스 의원의 연설에 맞춰 '우리가 믿는 미래'나 '버니' 등의 글자가 쓰인 피켓과 카드, 막대 등을 흔들거나 함성을 질렀다.

대학 축제 마당과 같은 분위기였다.
"정치혁명을 이룹시다. 우리는 처음에 조직도, 돈도, 이름도 없었습니다. 8개월 전 41%포인트를 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8개월 우리는 먼 길을 왔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택입니다. 링컨의 말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듭시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둔 마지막 유세에서 노정객은 부자를 위한 정치의 종식을 외치며 자신이 '정치혁명'을 이룰 적임자라며 표를 호소했다. 지난 8개월간 한결같이 외쳤던 주장이다.
그는 "소득 불평등, 월스트리트와 대기업을 위한 미국 경제가 중산층을 파괴했다"며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이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상위 1%가 부를 독점하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화를 낼 권리가 있다"며 서민들을 자극했다.
샌더스 의원의 등장에 앞서 영화 '헝거게임'의 주연 조쉬 허처슨이 연단에 올라 "버니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드는데 적임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예스!"라고 호응했다.
"사랑해요 버니!" 등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응원과 함성으로 샌더스 의원은 연설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프랑스 외교관은 기자에게 "보기 드문 유세"라며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주부인 리자 아이넘(52)은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사람들이 더 많이 투표했으면 좋겠다"며 "버니는 과격하거나 비현실적인 아니다. 그의 우선순위가 지금 정부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의 정부는 대기업 정책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는 바뀌어야 한다"며 "남녀든, 무슬림이든 아니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우리는 남이 아닌 우리로 살 자격이 있으며 이게 버니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현장의 이런 축제 분위기에도 '샌더스 캠프'는 내심 긴장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다.
전날 디모인레지스터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에게 3%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캠프 측은 지지자들에게 일제히 문자를 보내 "여론조사에서 약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금 버니의 캠프에 3%를 후원하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며 적극적인 후원을 호소했다.
앞서 찾은 디모인 시내 그의 캠프 사무실은 한산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가가호호 방문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투표참여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샌더스 캠프에서 만난 자원봉사자인 니오 살리스-그리펀(28)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잘못된 문제에 질렸다. 기성 정치에 질렸다"며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안하는데 사람들이 마침내 월가에도, 이익집단에도 휘둘리지 않을 적임자를 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각 후보들은 결전을 하루 앞둔 이날 아이오와 주를 누비며 심야까지 표심에 호소했다. 어느 후보도 승리를 장담 못 하는 초접전에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며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공화당의 선두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다른 주자들과 달리 주도 디모인이 아닌 북서부 수시티의 한 극장으로 갔다.
트럼프는 "우리는 아이오와에서 이겨야만 한다. 정말 이기고 싶다.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현장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인 제리 폴웰 리버티 대학교 총장과 인터뷰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경쟁자인 테드 크루즈의 지지기반이다.
크루즈 의원은 역시 부인과 함께 아이오와 시티의 한 빌딩에 나타났다. 그의 부친도 깜짝 등장했다.
그는 "나쁜 선택을 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큰 시점"이라며 "우리는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찍어달라는 호소다.
트럼프와 크루즈 의원은 이날 난타전을 벌였다.
크루즈 의원이 전날 트럼프가 민주당의 클린턴 전 장관과 친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공개한 게 싸움의 소재였다.
이에 트럼프가 "크루즈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자, 크루즈 의원은 방송에 나와 "트럼프 회계보고서를 보면 지금도 최소 4억8천만 달러(약 5천781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반격했다.
민주당의 유력주자인 클린턴 전 장관은 악재로 급부상한 '이메일 스캔들'을 진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이날 ABC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국무장관 재직시) 주고받은 이메일에 기밀로 분류된 정보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무부는 이틀 전 그녀의 장관 재직시절 주고받은 개인 이메일에서 22건의 1급 비밀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이 CNN 방송 인터뷰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고 나서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에게는 큰 위기라는 게 미 언론의 지적이다. 그녀는 이날 마지막 연설을 주도인 디모인에서 했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딸 첼시과 함께 했다.
힐러리 캠프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원봉사자 스테이시 벤딕스(28)는 "개인적으로 샌더스도 좋아하는데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 이기려면 샌더스는 안 된다"며 "샌더스는 너무 왼쪽이고 너무 진보적이어서 중도표를 많이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메일은 다 조사해서 그녀가 아무 잘못도 없다고 결론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이동 중 만난 우버택시 기사인 클레이 쿡(52)은 클린턴 전 장관이나 샌더스 의원 모두 '위선자'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을 겨냥해 "사회주의자나 민주적 사회주의자나 다른 게 뭔가"라고 반문했다. 또 "돈도 없는데 자꾸 공약만 내세우면 뭐하는가"라는 힐난도 곁들였다.
'메디케어 포 올'(Medicare-for-all), 워싱턴포스트(WP)가 '허구로 가득 찬 선거운동'이라고 불렀던 샌더스 의원의 공약을 비판한 것.
그러면서 그는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해서도 "(이메일 스캔들로) 기소까지는 안 되겠지만 많은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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