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흥길 소설 ‘완장’(1983년)은 군사정권을 풍자한다. 주인공은 귀향한 루저다. 저수지에서 금지된 낚시를 버젓이 하는 불량배다. 저수지 주인의 감시원 제안을 처음엔 거절하다 완장 얘기에 승낙한다. 완장을 차자 180도 달라진다. 낚시는 물론 가뭄에 농민들에게 물대는 것조차 불허한다. 결국 고용주 일행의 낚시까지 막으려다 쫓겨난다. 완장의 힘에 취해 자멸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은 노사모였다. 간판 인물 문성근, 명계남씨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보수진영 공격의 타깃이었다. 문화예술계에선 “싸가지 없고 너무 설친다”는 말이 많았다. 그해 5월엔 두 사람을 ‘노짱 완장부대’라며 조폭에 빗댄 한 일간지 만평도 나왔다. 대선 후에도 명씨는 여전했다. 2003년 10월 한 토론회에서 “나는 노 대통령 홍위병”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부에서 욕을 먹었다. 2007년 5월 당시 정동영계로 알려진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유 장관을 향해 “친노 완장 차고 개인 이익을 위해 설치지 말라”고 경고했다. 유 장관 홈페이지에서 정동영 전 의장 등에 대한 비난성 설문조사가 진행되자 발끈한 것이다.
4·13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에선 친박·비박계 간 ‘완장 공방’이 벌어졌다. 공천 주도권 싸움의 일환이다. 김무성 대표가 선방을 날렸다. 친박을 겨냥해 “권력 주변 수준 낮은 사람들은 완장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했다.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도 맞대응했다. “‘김무성 대권’을 위해 완장찬 사람들이 매일 별짓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박(진실한 친박)놀이’는 완장질 냄새를 풍긴다. 친박계는 지난해 12월19일 대구 동을 이재만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대거 참석해 ‘박근혜 마케팅’을 부추겼다. 진박 연대 6인방의 인증샷 해프닝은 그 뒤에 나왔다. ‘유승민(계) 찍어내기’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다. “잡박이 날아든다”는 비아냥이 번진다. 그런데도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이 대구 진박 예비후보 개소식을 순방한다고 한다. ‘진짜 감별사’ 최 의원의 참석은 ‘진박 인증마크’나 다름없다. 여기에 기대려는 완장 추종자가 더 한심하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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