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마지막 날 두 사람이 나와 남은 물건들을 챙기는 과정에서 한 달 전 멋대로 그만둔 정수가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기피 대상이 되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음이 드러난다. 뒤늦게 한 보조연구원이 들어설 때 따라온 유기견의 젖은 발자국에 정수가 오버랩되는데 눈 내리는 밤, 빈 사무실에 떠도는 버려진 것들의 ‘기이한 여운’은 절묘하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나무랄 데 없이 잘 짜여진 이 작품을 제치고 김갑용의 ‘슬픈 온대’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몇 군데 지나치게 긴 문장이 난삽하여 흐름을 방해하지만 폭과 깊이에서 앞지른다고 여겨졌다. 레비 스트로스의 명저 ‘슬픈 열대’에서 제목을 따온 이 단편은 화양동 학습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나’, ‘씬’을 통해 가난과 사랑에 대한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화자 씬(scene)은 ‘슬픈 온대’의 불편한 진실을 거친 질감으로 복합적으로 펼쳐보인다. 한편으론 “나쁜 걸 몰아준다고 나쁜 걸 다 몰아받는 것도 참 게으르고 나빠”라고 치열하게 자기 해부를 하는데 “그게 나야?”라고 외치며 흘리는 자기 회오의 눈물은 냉철하고 절절하다.
고뇌의 진정성을 가르쳐주는 것이 문학의 덕목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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