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 환경 살려줘야 지구재앙 막아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다. 물리학 전공자인 아인슈타인이 ‘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류의 삶은 채 4년도 남지 않게 된다’는 생태학자나 할 법한 말을 남겼다니 말이다. 벌이 없어지면 꿀 안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인류 생존까지 거론할 정도의 더 큰 문제가 있다. 벌은 이 식물 저 식물을 옮겨 다니면서 꽃가루를 전파한다. 이러한 수분(受粉)을 통해서 식물이 열매를 맺게 되고, 또 이것을 먹고 다른 동물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섭취하는 식량도 그 기저에는 바쁜 벌의 노동이 깔려 있다. 만일 벌이 사라진다면 당장 인류에게 필요한 곡물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 생태계의 안정성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산소가 없어져야 숨쉬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듯, 벌의 이런 바쁜 노동은 그들이 사라지기 시작해서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양봉업자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고, 과학자들은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바로 ‘군집붕괴현상’이라는 것으로, 일벌이 사라져 버리고 벌집에 남은 애벌레와 여왕벌도 죽어버려, 결국에는 벌통의 벌 집단 전체가 갑자기 멸망해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휴대폰의 전자기파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농약의 과다 사용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요인도 거론되고 있다. 또 벌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도 제안됐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찰은 대부분 양봉벌에 관한 것이어서 ‘야생벌’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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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
그럼 인류의 미래는 단 4년이 남았을 뿐인가. 다행히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같은 학술지에 곧 발표될 다른 연구자의 결과에 따르면, 파리를 포함한 다른 곤충도 꽃가루 수분에 상당히 기여를 하고 있다. 전 세계 39개 지역에서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수분의 40% 정도는 벌이 아닌 다른 곤충이 담당하고 있다. 물론 벌보다는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만 워낙 숫자가 많고 꽃을 방문하는 횟수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생태계가 인간을 위해서 제공하는 혜택을 ‘생태계 서비스’라고 한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강변 갈대밭의 흙 속에서는 세균이 물속의 질산염을 기체로 날려 보내 물을 정화하고 있다. 돈도 들어가지 않는 수처리 시설인 셈이다. 열대 해안의 맹그로브 숲은 자연의 방파제다.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몰려 왔을 때 해일을 막아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산의 관목과 풀들은 흙을 붙잡아서 산사태를 막아주고 있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뱀이 없어진다면 쥐와 같은 동물이 창궐해서 곡물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이다.
사실 서두에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은 사실 그가 한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리스 마테를링크와 ‘종의 기원’을 집필한 찰스 다윈이 비슷한 말을 했을 뿐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유명한 과학자의 입을 빌려서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잘못된 인용일지언정 그 내용은 다시 되새겨봐야 한다. 인류의 미래가 정확히 몇년이 남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복지는 물론 존재 자체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강호정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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