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자양분 삼아 국가 경쟁력 키워 미래 준비 나서야 한국에서 사법시험(사시) 존폐 문제를 놓고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 뜨겁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학비가 1년에 2000만원이 넘는 탓에 이것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흙수저는 금수저에 비해 법조인이 돼 계층 사다리를 오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수저 계급론은 비단 법조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또한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도 소득 불균형과 기회의 균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의 밑바탕에는 프랑스의 흙수저 집단인 무슬림의 분노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사시 폐지 유예 논란을 계기로 법조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흙수저에게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사회적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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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이런 순기능을 했던 미국의 소수계 우대정책이 지금 도마에 올라 있다. 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아시안이 대학 입시에서 흑인, 라티노뿐만 아니라 백인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 아시안아메리칸교육연합(AACE)은 지난 5월 소수계 우대정책이 아시안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하버드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예일, 브라운, 다트머스 등 아이비리그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 아시아계 60여개 민간단체는 아이비리그대학의 아시안 차별을 이유로 미 법무부와 교육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실제로 2006년 아시안계 학생이 프린스턴대를 상대로 소송을 낸 뒤 이 대학의 아시안 입학률이 2007년 14.7%, 2012년 21.9%, 2014년 25.4% 등으로 늘어났다. 백인인 애비게일 피셔는 2012년 소수계 우대정책으로 역차별을 받았다며 오스틴 텍사스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미 대법원은 9일(현지시간) 이 소송에 대한 청문 절차에 착수했고 이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제 소수인종이 아니라 저소득층 우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까지 명문 대학에 입학한 흑인과 라티노의 86%가 중산층과 상류층 가정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시사 종합지 애틀랜틱 최신호가 지적했다. 인종과 관계없이 저소득층에 입시 우선권을 줘야 기회의 사다리가 더욱 튼튼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센트리 재단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의 50개주 중에서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주 등 10개주는 공립대의 소수계 우대정책을 금지하고 있다. 또 8개주는 이미 저소득층 우대정책으로 전환했고, 또 다른 8개주는 저소득층 지원예산 확대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소수계 우대정책의 근본 취지는 단순히 소수계에 대한 기회 제공에 머물러 있지 않다. 소수계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이 사회지도층을 형성해야 미국 사회의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외눈박이로 금수저를 대물림하는 데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미국 등 선진국은 다양성을 자양분 삼아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사시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흙수저의 계층 사다리 문제에만 머물지 말고, 병든 한국사회의 건강을 되찾으면서 국가적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의 전환 문제로 이슈가 옮아가야 한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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