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상헌의 만史설문] 〈88〉 좌고우면과 궁서설묘(窮鼠囓猫)

관련이슈 강상헌의 만史설문

입력 : 2015-12-06 22:29:29 수정 : 2015-12-06 22:29:29

인쇄 메일 url 공유 - +

정치인 문재인의 발언 중에 나온 숙어 ‘좌고우면(左顧右眄)’이 각광받고 있다. 자신의 ‘어떤 심기’를 드러내려는 정치적 언어 선택이겠지만, 이를 옮기는 기자들은 이런 문자(한자)를 보며 별난 느낌을 갖는 모양이다. ‘좌고우면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언론의 글도 눈에 여럿 띈다.

한자 없이 자란 젊은 엘리트들 입장에서야 신기할 수도,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지난 시절, 대개의 사회 구성원들이 문자를 알고 소통하던 때는 따로 이런 ‘해석’이 필요치 않았다. 세상 선배 격인 정치인들이 유식한 말씀 한마디 꺼내놓을 때마다 젊은 기자들은 새롭게 한자어 공부를 하고 그 과정은 저렇게 기사로 스며난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정치의 전유물인가.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사진은 새해 예산안이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모습. 예산안은 자신들 입장만 좌고우면하는 여야의 구태 탓에 법정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문 대표가 기자회견 직후 유성엽 황주홍 신기남 노영민 의원과 김창호 전 분당갑 지역위원장 등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한 것도 과거 좌고우면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문 대표는 자신에게 ‘한칼’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두 달 전에 사퇴했던 안병욱 윤리심판원장을 복귀시켰다····” (한겨레 칼럼 ‘김의겸의 좌충우돌’ 한 대목)

문재인이 일도양단(一刀兩斷),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결기를 보였다는 내용이다. 칼럼 제목의 좌충우돌(左衝右突)도 심상치 않다. 문자가 이리 어지럽게 춤춘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인가. 문자 속 모를 독자 시민은 어쩌라고. 김 기자는 그 속 알 만한, 경험 많은 언론인이다.

좌고우면은 왼쪽 좌, 돌아볼 고, 오른쪽 우, 곁눈질할 면의 합체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뜻이다. 한자어 문법은 융통성이 있다. ‘돌아보며 (동시에) 눈깔질한다’고, ‘돌아본 후에(도) 곁눈으로 꼬나본다’고 읽을 수도 있다. 眄(면)은 눈 목(目)과 가릴 면(丏)의 합체다. 한 눈 가리고 보는 것, 곁눈질이다. 눈에 선한 이 비유, 한자의 매력이다.

이 뜻만으로 문재인의 결기가 포착되지는 않는다. 대개 사자성어가 그렇듯 옛날의 역사나 설화가 그 언어현상에 개입한다. 고사(故事)다. 고사성어의 뜻이다. 동아시아의 지난 시대 이야기들이 우리 지식의 상당부분을 짜고(직조·織造) 거기에 수(繡)를 놓고 있는 것이다.

“···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봐도 (그대만한) 사람이 없다 할 것이다.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는가(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좌고우면 위약무인 기비오자장지재)···.”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로 시문에 능했다. 좌고우면은 조식이 재능과 학문에 출중한 오질 장군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됐다.
조조의 아들인 위(魏)의 조식(192∼232)은 오질(吳質)이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기상이 출중하여 고금을 통틀어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원래 좌우를 굽어보는 자신만만한 모양, 또는 이런 사람을 칭찬하던 말로 시작된 이 숙어가 나중에는 어떤 일에 대한 고려가 지나쳐서 (필요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로 변했다.

왕이 덕(德)이 없으면 다른 성씨 가진 이로 바꿀 수 있다는 역성(易姓)혁명 사상 한 자락을 펼친 맹자(BC 372∼BC 289년)도 이 말의 형성에 등장한다. 맹자의 치열한 질문 세례에 제선왕이 쩔쩔매다 딴청 부리는 모습이 생생하다. 조식의 원래 뜻이 변용(變容)되는 단서일까?

맹자는 자기가 섬기는 제후들에게도 좀 까칠하게 굴었던가? 봉건왕조시대에 역성혁명사상으로 간주될 만한 주장을 편 까닭에 동양 삼국에서는 맹자를 교과서에서 자주 빼곤 했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말했다. “왕의 신하가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믿는 친구에게 맡기고 외국에 갔다 돌아와 보니 그 동안 처자가 굶고 추위에 떨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절교해야지요.”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말을 했다(顧左右而言他·고좌우이언타).

역사가 지나며 이 좌고우면은 우유부단(優柔不斷), 수서양단(首鼠兩端) 등과 비슷한 뜻이 됐다. 수서양단은 쥐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요리조리 엿보는 것, 즉 거취(去就)나 진퇴(進退)를 결단하지 못하고 관망(주저)하고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문자는 이런 쓰임새도 짓는다. 나이든 분들은 지금도 ‘주객(酒客)은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니 술부터 한 잔 드시오’ 하며 맛의 멋을 과시한다. 주당은 거나하게 마신 다음 국수(麵·면)를 먹는다는 일종의 술자리 풍류다. 선공후사(先公後私)에서 유래했을까. 이렇게 말글은 유쾌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 같은 ‘속담’이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고,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이제 독자나 (정치 소비자인) 시민은 한자나 한자어에 익숙하지 못하다. 자신의 높은 언어(문자) 실력과 지성으로 고객(대중)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눈높이’의 뜻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말은 없지만, 우리 언중(言衆)은 시험에 들고 싶지 않다.

언어는 바른 심신(心身)의 반영이다. 이제 문재인 같은 정치인도, 언론인과 교육자들도 새 사람들의 새 시대가 요청하는, 뜻도 모양도 바른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궁서설묘(窮鼠?猫)는 궁지에 몰린 쥐가 급기야 고양이를 무는 것이다. 실망한 ‘새 사람들’이 그 유식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 급기야 삿대질 하고 나설 수도 있다.

함부로 문자 쓰지 마라. 정 쓰고 싶으면 친절하게, 정확하게 설명하라. 귀중한 후세들에 대한 분별이고 예의다.

강상헌 언론인

■ 사족(蛇足)

왼쪽 좌(左)와 오른쪽 우(右)는 문자학 입문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다. ‘또 우’라는 훈(訓)과 음(音)으로 읽는 우(又)자가 두 글자의 바탕인 위의 두 획이다. 직접 서너 번 그려보면 알게 된다. 문자학은 소학(小學)이라고도 하는 글자의 기본 공부다. 거북 등딱지와 소뼈에 새겨진 그림 같은 글자 갑골문(甲骨文)을 즐기는 것부터 소학은 시작한다.

왼쪽 좌(左)의 변천
又는 손 그림의 디자인이다. 갑골문과 그 다음 시대의 금문(金文)에서 간략화한 손 모양이 보인다. 거기에 공구(工具)를 뜻하는 공(工)자가 붙으면 왼쪽 좌(左), 입 구(口)가 붙으면 오른쪽 우(右)다. 왼손은 뭔가를 만드는 손, 오른손은 먹기 위해 입으로 가져가는 손이라는 뜻이었겠다. 口는 입 말고 신에게 비는 말씀을 담은 상자의 그림이었다는 설도 있다.

어원(語源) 즉 말밑으로 친구 우(友)의 짜임을 보자. 左右와 같이 위 두 획은 又의 변형이다. 그 아래 又가 붙으니 두 손 맞잡은 모양이다. 우정의 적확(的確)한 상징 아닌가? 한자는 그림과 뜻의 모자이크, 인류 최고(最古)의 퍼즐이다. 최초의 시(詩)이기도 하다. 잡으라는 손, 그 손 맞잡으니 우리도 시인이다. 차별(差別) 따위는 잊으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송지효 '바다의 여신'
  • 김다미 '완벽한 비율'
  • 조보아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