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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영상가득 탐미적 에로티시즘

입력 : 2015-11-11 20:25:58 수정 : 2015-11-11 21: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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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숙의 에세이 영화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다양한 체위를 과감하게 구사하지만 전혀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인간이 가진 육체와 사람이 행하는 섹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스크린 가득 깔끔하면서도 당당하게 펼쳐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야하다거나 음란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듯, 남녀 주인공들은 마치 다비드상이나 미로의 비너스상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살갗의 느낌이 땀으로 찐뜩하지 않고 향긋한 비누로 샤워한 피부처럼 매끄럽다. 정제된 영상이 받쳐 주는 힘이다. 연한 청회색이나 베이지와 핑크의 중간색 같은, 수묵담채화처럼 고상한 화면의 빛깔 덕분이다. 대사에 앞서 영상으로 말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영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다. 16년 전 배우 서갑숙이 쓴 동명 에세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평범하지 않았던 성경험 고백을 고스란히 적어, 발간 당시 140만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으로 방송출연 정지, 검찰의 내사, 대형서점의 반품 등 화제의 중심에 서야 했다. 음지에서 부끄러운 것, 더러운 것처럼 터부시되던 성담론을 양지로 끌어낸 것은 분명 서갑숙의 작은 반란이었다.

이후 빈번한 영화화 제의를 매번 거절해오던 그가 덜컥 수락한 이유는 장성수 감독의 시나리오 때문이다. “내가 쓰고자 했던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는데, 남자가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그리 잘 아는지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촬영장을 방문해 제작진을 응원하고 여주인공을 맡은 신인 한지은에게는 그때의 심정과 후일담을 들려주며 연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혼, 연인과의 계속되는 이별로 마음을 닫게 된 여자 진희(한지은)는 여느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과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남자 M(최리호)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된다. 사랑은 행위가 아닌 떨림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희는 서로 집착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가슴 아픈 이별도 없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남녀의 관계가 일방적 쟁취가 아닌 섬세한 배려를 통해 완성되는 것임을 확인하려 한다. 그것으로 위로받고 치유되면서, 버림받은 여자가 아닌 사랑받고 사랑하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우선 카메라는 등장 여배우들의 고혹적인 매력을 따라가며 표정이든 몸짓이든 시종 예쁘게 담아낸다. 진희의 꿈 속 장면에서 활용된 커다란 천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남녀의 가벼운 터치는 몹시 감각적이다. 작품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이면서 영화적 효과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장치가 된다.

영화는 가끔 격정적으로 포옹하고 키스하며 급물살을 타기도 한다. 하지만 악기를 연주하듯 리드미컬한 흐름을 보이는 대목에서는 부드러운 배경음악을 절묘하게 입혀, 객석의 별다른 거부감 없이 마치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만 같은 ‘공감’을 누리도록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한다.

장 감독은 살갗만큼이나 손에도 유독 포커스를 맞춘다. 손을 어루만지는 작은 동작에서부터 ‘욕망’보다는 섬세한 ‘애정’을 포착해낸다. 여자의 가슴 위에 있던 손을 떼어다 탁자 위에 놓고 그 위에 살포시 포개는 남자의 손이 그렇고, 바닷가 물속 모래 위에 서로 두 손을 담그거나 맞닿는 장면이 그렇다. 마주 앉아 발을 부비며 장난치는 것도 애정이 묻어나는 귀여운 모습이다.

사랑을 나누기 전, 진희의 M을 향한 무언의 응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눈에 담은 이야기가 많아서다. 진희 역의 한지은은 그윽하고 깊은 눈빛으로 스크린 밖 좌석에 몸을 담근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서 그는 충분히 관능적이다. 흠뻑 우수를 머금은 그의 까만 눈동자에 어느새 관객들은 중독되고 만다.

단순한 ‘섹스’와 진정한 ‘사랑’의 ‘차이’를 드러내는 독백과 대사들은 가슴을 적신다.

 “그 사람이 내 마음의 병을 치유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더 큰 병이 생겼다.” “그와 사랑을 나눈 뒤엔 허무함이…, 민망함이 없었다.” “살아 있구나. 내가 생명이구나. 이를 온전히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요.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나 느낄 수 있는 것을…, 그가 내게 준 것은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실전 연애에 응용할 만한 대사와 독백도 있다.

 “그(당신)에게 안겨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가 된 기분이라고….” “내가 사랑할까 무서워요? 집착하면 미워질까봐?” “당신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요. 상처까지도.” “집착이 사랑을 움직이게 하지만 사랑을 멈추게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중심은 진희씨 안에 있어요. 당연한 한마디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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