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S 스토리] 그 옛날 서리풀 무성하던 곳… 법조 1번지 변신

관련이슈 S 스토리

입력 : 2015-10-31 06:00:00 수정 : 2015-10-31 09:46:21

인쇄 메일 url 공유 - +

서초동 법조타운 20년
제 이름은 ‘서리풀’입니다. 혹시 모르시나요. 한자로 ‘서초(瑞草)’라고 쓰죠. 말 그대로 ‘상서로운 풀’, 곧 벼를 뜻한답니다.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저만큼 상서로운 풀이 또 어디 있겠어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은 제가 아주 오래 산 곳입니다. 예전에는 서리풀만 무성한 평야였죠.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한 쌀도 여기서 났다고 하니 자랑할 만하죠.

서초동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법조계’라고요. 정답입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아울러 부르는 법조계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말이 서초동이죠. 1995년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들어서며 서초동 법조타운이 완성됐으니 올해가 꼭 20주년이네요.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 중에서 특히 검찰청이 서초동의 상징인 듯해요. 비리에 연루된 고위층 인사가 검찰에 출석하는 장면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기 때문인가봐요. 국회의원들이 서초동에 줄줄이 불려오면 한여름인데도 ‘서초동발(發) 사정한파’란 표현이 꼭 등장하죠. 몇 해 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검찰 수사를 받는 대기업 구단끼리 만났다고 해서 ‘서초동 시리즈’로 불리기도 했죠. 저는 ‘생명’과 ‘건강’의 풀인데, 이런 말을 접하면 정말 서운해요.

할아버지께 들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인데요. 오늘날 강북에서 출발해 한강을 건너온 반포대로와 우면산 기슭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지점에 ‘왕촌(王村)’이란 마을이 있었대요. 고려 왕족이었던 왕씨들이 망국 후 이곳에 모여 살았답니다. 갓 개국한 조선이 왕씨들을 마구 탄압할 때 태조 이성계의 꿈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나타나 “내 후손에게 보복하지 말라”고 부탁한 뒤 이성계의 특명으로 왕씨들을 위한 정착촌이 조성됐다고 하더군요.

그 왕씨들의 무덤이 한 기 두 기 생겨나 나중에는 큰 묘지가 되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촌뿐만 아니라 서초동 일대가 온통 공동묘지였대요. 제사상에 올릴 밥을 지으려면 저 같은 서리풀이 참 많이도 필요했겠어요.

서리풀만 무성했던 동네가 묘지로 변하더니 이제 대한민국 법조계 1번지가 됐습니다. 높으신 나랏님들께서 왕촌의 교훈을 꼭 새겼으면 해요. 보복은 결국 더 큰 보복을 부를 뿐이고, 권력이란 무소불위로 행사할 때가 아니라 자제하고 또 자제할 때 진정 값진 것임을요.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샤오팅 '완벽한 미모'
  • 샤오팅 '완벽한 미모'
  • 이성경 '심쿵'
  • 전지현 '매력적인 미소'
  • 박규영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