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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7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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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30 18:10:08 수정 : 2015-10-30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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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못누리는 젊음 왜 이리 많은지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릴 수밖에…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은 무섭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는 일을 낸다. 그 맹목적인 열정은 쉽게 끝나지 않고 집요한 성격이 된다. 반대로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안타깝다. 그는 쉽게 우울에 빠진다. 왜 누려야 할 청춘을 누리지 못하는 젊음이 그리도 많은가.

‘3포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5포시대, 7포시대를 거쳐 이제는 차라리 N포시대란다. 젊음의 열정만큼이나 강한 ‘포기’라는 병이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마침내 인간관계를, 꿈을, 희망을 포기해야 했다는 7포가 진정 우리 젊음의 현주소인가. 나는 바란다. 이것이 일종의 은유이기를. 미생만을 만들어내는 거대 공룡과 같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힘 있는 조소이기를.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노량진 학원가에 가면 2000∼3000원짜리 컵밥으로 식사를 하고, 고시원에서 불편한 잠을 자면서 2년, 3년, 5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음들이 많다. 그들이 3년, 때로는 5, 6년을 시험공부만 하며 젊음도 포기하고 잠도 포기하고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사는 것은 공무원에 걸맞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이 시험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시험에서 자꾸자꾸 밀리다 5년이 가고 10년이 가면, 그것을 위해 그가 포기했던 젊음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이 그렇게 공무원이 되려고 할까?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서울대생의 말 속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실제로 공무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타 직업에 비해 안정감이 있고 저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S기업에 다닌 지 10년 만에, 30대 후반에 공무원이 된 지인이 있다. 그가 말하길 ‘천국’에 입성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가 다닌 대기업에선 죽어라 일만 했지만 미래가 없고, 임원이 되어 잘 나가는 선배들도 다른 것 다 포기하고 일만 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되고 보니 월급은 대기업에서 받았던 것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스트레스와 시간 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편안해했다.

청춘은 ‘포기’라는 우산 속에서 숨고, 청춘이 지나면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삶을 재부팅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대세라면, 그 속에는 분명히 달라진 삶의 지향성이 있는 것 같다. 그 지향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 왜 젊음이 그렇게 자기 주도적이지도 않고 진취적이지 않느냐며 야단칠 일만은 아니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그때도 어른들은 TV에 나와서 요즘 젊은이들은 야심도 없고 뚝심도 없다고 야단을 했다. 그때 우리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면서 지금 아이들이 ‘포기’ 뒤에 숨는 것처럼 기형도 뒤에, 헤세 뒤에 숨었다. 우리에게 기형도는 절망의 시인이고, 헤세는 누구보다도 그림자를 긍정하는 작가였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텅 빈 희망’에 공감했고 ‘곰팡이 피어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를 긍정했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세상과 벽을 치고 내 속으로 웅크려들던 그 시간은 참 소중한 것이었다. 그것은 막강한 세상과 걱정 많은 부모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에서 도망가 ‘나’ 자신 속으로 돌아오는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뭔지, 내 안에 갈피 모를 그리움은 어디를 향하는지, 내가 좋아하고 키우고 싶었던 내 안의 작은 씨앗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자 한 시간이었으니.

그런 때가 있다. 내 자식이 뭐가 될지 어처구니가 없을 때, 삶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 때! 그때 어른들의 할 일은 그저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이다. 사랑이 하는 가장 크고 어려운 일은 기다려주는 일이고, 지지해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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