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릴 수밖에…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은 무섭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는 일을 낸다. 그 맹목적인 열정은 쉽게 끝나지 않고 집요한 성격이 된다. 반대로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안타깝다. 그는 쉽게 우울에 빠진다. 왜 누려야 할 청춘을 누리지 못하는 젊음이 그리도 많은가.
‘3포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5포시대, 7포시대를 거쳐 이제는 차라리 N포시대란다. 젊음의 열정만큼이나 강한 ‘포기’라는 병이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마침내 인간관계를, 꿈을, 희망을 포기해야 했다는 7포가 진정 우리 젊음의 현주소인가. 나는 바란다. 이것이 일종의 은유이기를. 미생만을 만들어내는 거대 공룡과 같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힘 있는 조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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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
왜 사람들이 그렇게 공무원이 되려고 할까?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서울대생의 말 속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실제로 공무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타 직업에 비해 안정감이 있고 저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S기업에 다닌 지 10년 만에, 30대 후반에 공무원이 된 지인이 있다. 그가 말하길 ‘천국’에 입성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가 다닌 대기업에선 죽어라 일만 했지만 미래가 없고, 임원이 되어 잘 나가는 선배들도 다른 것 다 포기하고 일만 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되고 보니 월급은 대기업에서 받았던 것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스트레스와 시간 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편안해했다.
청춘은 ‘포기’라는 우산 속에서 숨고, 청춘이 지나면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삶을 재부팅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대세라면, 그 속에는 분명히 달라진 삶의 지향성이 있는 것 같다. 그 지향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 왜 젊음이 그렇게 자기 주도적이지도 않고 진취적이지 않느냐며 야단칠 일만은 아니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그때도 어른들은 TV에 나와서 요즘 젊은이들은 야심도 없고 뚝심도 없다고 야단을 했다. 그때 우리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면서 지금 아이들이 ‘포기’ 뒤에 숨는 것처럼 기형도 뒤에, 헤세 뒤에 숨었다. 우리에게 기형도는 절망의 시인이고, 헤세는 누구보다도 그림자를 긍정하는 작가였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텅 빈 희망’에 공감했고 ‘곰팡이 피어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를 긍정했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세상과 벽을 치고 내 속으로 웅크려들던 그 시간은 참 소중한 것이었다. 그것은 막강한 세상과 걱정 많은 부모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에서 도망가 ‘나’ 자신 속으로 돌아오는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뭔지, 내 안에 갈피 모를 그리움은 어디를 향하는지, 내가 좋아하고 키우고 싶었던 내 안의 작은 씨앗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자 한 시간이었으니.
그런 때가 있다. 내 자식이 뭐가 될지 어처구니가 없을 때, 삶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 때! 그때 어른들의 할 일은 그저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이다. 사랑이 하는 가장 크고 어려운 일은 기다려주는 일이고, 지지해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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