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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살인',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까지...'누가 지은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입력 : 2015-10-27 15:54:02 수정 : 2015-10-27 16: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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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언어적 장애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돈, 가족조차 가진 것도 별로 없는 그녀. 영화 '어떤 살인(감독 안용훈)'의 지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 속 지은은 살면서 여성으로서 당하면 안 될 참혹한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심지어 경찰로 표방되는 공권력은 오히려 그녀를 ‘꽃뱀’ 취급하며 ‘요즘 년’이라 칭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유일하게 가족 같던 죽마고우 역시 남자친구에게 매일같이 처참하게 폭행을 당하며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 결국 지은은 그동안의 연약함을 내던지고 스스로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극 중에서 지은이 겨눈 총구는 과연 가해자 남성 셋만을 향해 있는 것일까?  지은이 피해자에서 역설적이게도 가해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약자’에 대한 세상의 불합리한 태도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가 23분 35초마다 1건씩 발생하고, 해당 범죄율이 10년 사이에 3배로 급증한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이제는 피해자가 아닌 이들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로 보여진다. 실제로 법과 사회적인 대응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보수적인 사회 안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은 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죄인 취급을 당하는 모순을 겪기에 그렇다. '어떤 살인'은 이런 사회적 풍조 속에서 도착했다.

극 중에서 여 형사 자겸은 동료 형사의 “피해자처럼 보이진 않는데요?”라는 말에 발끈한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미비한 처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사라고 볼 수 있다.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지은은 이럴 바엔 차라리 가해자로 나서기로 작정한다. 지은의 “이미 전 그날 죽은 거예요”라는 힘없는 한 마디 속 ‘그날’은 단순히 그녀가 참혹한 일을 당한 때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며 이를 포함해 그동안 사회로부터 비꼬는 듯한 눈초리를 받고, 가시돋힌 무의식의 한 마디를 들었던 ‘그날들’에 대한 응어리다. 이에 지은은 주체적 심판을 내리려 한다. 리볼버를 능숙한 자세로 꺼내드는 그녀의 태도는 마치 현실의 여성들을 대신해서 복수해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외적으로 지은의 복수가 정당방위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언쟁이 오갈 수 있다. 실제로 영화처럼 유사한 복수 사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피해 여성이 되려 (복수로 인해) 가해자로 형사처벌을 받은 판례가 대부분이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은의 복수극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담담하게 따라다니며 그녀 행동에 당위성을 그려낸다. 어쩌면 당위라기보단 울부짖음에 가깝다. 이를 통해 '어떤 살인'은 간접적으로나마 실제 피해 여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소해주는 대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지은이 거침없이 당기는 방아쇠는 굳이 피해 여성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여성이 아닌 남성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그렇다.

이는 신현빈의 사슴 같은 눈망울과 가녀린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멍울 가득한 에너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현빈의 청순한 비쥬얼과 캐릭터의 서슬퍼런 행동들이 서로 상충되면서 극의 몰입도와 호소력을 한층 더 높이고 있는 것.  신현빈의 외모와 극중 상황은 야생에서 사자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사슴’ 그 자체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그녀의 세상을 향한 매서운 눈빛만큼은 맹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동안 지은은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상황 속에서도 크게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녀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지은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사연을 터놓기 시작했다. 이제 그 한 많은 이야기를 관객들이 얼만큼 진심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단계가 남아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어떤 살인’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다. '어떤 살인'의 스토리를 단순히 지나치기엔 이 세상의 ‘지은들’이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 같은 뜻의 다른 표현, 보고싶은 영화와 봐야만하는 영화가 있다. 전자는 기대가 되기에 후자는 의미가 있기에. 만약에 이 말이 맞다면 '어떤 살인'은 보고싶은 영화이자 봐야만하는 영화다. 당신의 기대감이 곧 당신의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일 개봉. 

(사진 = 영화 스틸컷, 포스터)
이슈팀 ent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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