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미국 작가 N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한국에서 바른 삶의 가치 중 하나다. 세종대왕의 학자들이 ‘용비어천가’에서 보듬어낸 이 상징은 시대의 풍운아 한창기(1936~1997)의 잡지로 현대에 우뚝 섰다. 나무의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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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弱冠)은 20세 청년이 처음 관을 쓰는 성년의례의 뜻을 품은 ‘20세 나이’의 별명이다. 연합뉴스 |
씩씩한 청년들의 터전에서 옛 권세 못 잊어 앙앙불락 망발(妄發) 벌이는 여러 분야 꼴불견들이 숨 쉴 공간은 없다. 한국은 더 젊고 옳아야 한다. 모두들, 나잇값하고 사는지 스스로 꼽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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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이름들의 원조는 논어(論語)다. 공자의 인생수업 과정에서 나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다만 그 표의문자(表意文字) 개념어가 품은 속뜻을 알아야 그 멋과 뜻은 날아갈듯 생동한다. 요즘도 흔히 쓰이는 이 어휘들, 밑줄 좍 긋고 외우자. 우선 공자님 말씀, 출처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이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굳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어떤 말에도 곧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에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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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기의 ‘뿌리 깊은 나무’ 표지들. 나무는 나이테나 ‘큰 나무’처럼 인간 여러 이미지의 비유로 자주 활용된다.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제공 |
그 말을 구성하는 문자 각각의 주머니 속의 뜻을 바탕으로 이 말들이 새로운 뜻을 지닌 말로 변신 또는 진화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실망을 좀 덜 수 있으리.
◆ 10대 : 유충 지학 과년 어린아이 시절을 지난 10세 전후 나이는 유충(幼沖)이다. 사극에서 가끔 나오는 ‘세자께서 아직 유충이시니…’ 하는 대사(臺詞)로 이 말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겠다. 드라마도 말 뜻 알고 보면 더 재밌다.
(공자가) 학문(學) 즉 공부에 뜻(志)을 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선 그 나이 15세가 지학(志學)이다. 공부 생각이 없는 어린 자녀들을 애달프게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일까? 이 대목에서 여러 엄마들 마음 복잡하겠다.
‘과년한 딸’이라는 말 때문에 중년 친구들이 쌈박질 벌였다는 얘기 예전에 들었다. 과년(瓜年) 즉 시집가기 좋은 나이란 말을 노처녀 과년(過年)으로 오해한 나머지 생긴 일이었단다. 채소인 오이의 한자 과(瓜)를 분해하면 대충 여덟 팔(八)자 2개라는 다소 우스꽝스런 생각이 만든 나이의 이름이다. 8 더하기 8은 16, 춘향이나 줄리엣 시집간 나이 이팔청춘일세.
◆ 20세 : 약관 방년 남자 20세는 갓(冠) 쓰는 나이 약관(弱冠)이다.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 10세를 배우기 시작하는 유(幼), 20세 약(弱), 집을 가지는 즉 장가가는 30세 장(壯), 벼슬을 하는 40세 강(强) 등으로 적은 데서 온 말이다. 여자 20세는 꽃 같은 나이 방년(芳年)이다. 성년(成年)을 가리키는 개념인데, 과거 사회 남녀 차별(差別)의 한 모습이겠다.
◆ 30세 : 이립 30세를 이르는 이립(而立)은 (홀로) 선다(立)는 의미다. 마음 학문 가정 경제 등 여러 면에서 홀로 선다는 것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서정윤의 나른하고 달콤한 시(詩) ‘홀로서기’도 있지만, ‘오늘날 한국의 30세 무렵들’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아픔 느낀다. 힘내자, 청년들아.
◆ 40세 : 불혹 불혹(不惑), 미혹(迷惑)에 빠지지 않는단다. 유혹에 휘말려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님 잘났어, 정말 별꼴이야!” 말이 나올 만큼 요즘 사는 모습들과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공감하지 않더라도, 혹 시험문제로 보게 된다면 ‘불혹은 40세를 이르는 말’이라고 진술할 것, 일종의 용어니까.
◆ 50세 : 지천명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은 50세다. 사전은 타고난 운명, 하늘의 명령 등 비교적 간단한 언어로 새기고 말지만 종교 윤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천명’은 그리 만만할 수 없다. 그 중 유가(儒家)의 천명으로 이 말을 이해하는 것이 처음 이 말을 50세의 대용(代用) 언어로 퍼뜨린 공자와의 인연에 적합하겠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는 말처럼 천명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고, 결국 하늘의 뜻으로 세상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 말을 운명(運命)이나 섭리(攝理)와도 같은 뜻으로 알았을 것이다.
하늘에 따른다는 이 뜻은 중국 대륙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 여러 나라들의 정치이념으로도 오래 기능했다.
‘하늘의 명령’에 따라 권한이 주어진 전제적 제왕(帝王)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치사상의 핵심이 바로 천명이었던 것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하(下)편으로 계속>
■ 사족(蛇足)
나이의 한자어 연령(年齡)은 한자의 본디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글자들이다. 거북 배딱지나 소 어깨뼈에 새겨졌던 갑골문(甲骨文)은 3500년 전 황하(黃河) 유역 은나라 사람들의 ‘그림 작품’이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점을 치기 위한 도구로 그림을 그렸다. 해 년(年)자는 수확한 벼를 지고 가는 사람 모습 갑골문에서 변해온 것이다. 오랜 변천(變遷)의 과정을 함께 보면 이해도 쉽거니와 경이롭다. 처음에는 수확의 기쁨이나 더 많은 식량의 기원을 그린 그림이었을 터다. 해마다 그 수확이 이어지니 오늘날 해 년(年)의 뜻이 됐다. 시 읽듯 그림 보면 그 뜻이 보인다.
령(齡)은 이빨 치(齒)를 뜻 요소로, 령(令)을 소리요소로 합친 글자다. 소리(성聲)는 ‘령’이되 그 의미(형形)는 ‘이빨’인 것이다. 동물 나이는 이빨로 쟀다. 그래서 나이의 뜻이 된 것이겠다. 齡의 바탕인 치(齒)는 원래 이빨 그림이다. 그 그림에 옛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소리 요소인 지(止)를 붙여 완성한 글자가 치(齒)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동양 문명의 그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른다. 뜻글자이기 이전에 재미난 그림인 것이다. 웹툰처럼, 그 그림과 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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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년(年)의 갑골문 (이락 ‘한자정해’ 삽화 인용) |
령(齡)은 이빨 치(齒)를 뜻 요소로, 령(令)을 소리요소로 합친 글자다. 소리(성聲)는 ‘령’이되 그 의미(형形)는 ‘이빨’인 것이다. 동물 나이는 이빨로 쟀다. 그래서 나이의 뜻이 된 것이겠다. 齡의 바탕인 치(齒)는 원래 이빨 그림이다. 그 그림에 옛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소리 요소인 지(止)를 붙여 완성한 글자가 치(齒)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동양 문명의 그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른다. 뜻글자이기 이전에 재미난 그림인 것이다. 웹툰처럼, 그 그림과 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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