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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나이를 뜻말로 비유한 표현은 한자문화권의 특별한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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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25 20:24:12 수정 : 2015-10-26 20: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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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나이의 이름들 (상) 나무도 인생도 나이가 든다. 목리(木理)라고도 하는 나이테, 연륜(年輪)은 사람 나이이기도 하다. 나이테처럼 뿌리도 자란다.

‘뿌리 깊은 나무’는 미국 작가 N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한국에서 바른 삶의 가치 중 하나다. 세종대왕의 학자들이 ‘용비어천가’에서 보듬어낸 이 상징은 시대의 풍운아 한창기(1936~1997)의 잡지로 현대에 우뚝 섰다. 나무의 메타포다.

약관(弱冠)은 20세 청년이 처음 관을 쓰는 성년의례의 뜻을 품은 ‘20세 나이’의 별명이다.
연합뉴스
나이에 맨 먼저 따라붙는 말은 ‘값’이다. 나잇값은 엄중한 책임이다. 지하철 경로우대석에서 “내가 더 늙었다!”며 싸움질하는 나이테 여러 겹인 이들을 떠올린다.

씩씩한 청년들의 터전에서 옛 권세 못 잊어 앙앙불락 망발(妄發) 벌이는 여러 분야 꼴불견들이 숨 쉴 공간은 없다. 한국은 더 젊고 옳아야 한다. 모두들, 나잇값하고 사는지 스스로 꼽아보자.

나이 이름들의 원조는 논어(論語)다. 공자의 인생수업 과정에서 나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숫자 나이를 뜻 품은 말로 비유(比喩)해내는 표현은 한자문화권 동아시아 문명의 특별한 멋이다. 나잇값을 엄숙하게 일러주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다만 그 표의문자(表意文字) 개념어가 품은 속뜻을 알아야 그 멋과 뜻은 날아갈듯 생동한다. 요즘도 흔히 쓰이는 이 어휘들, 밑줄 좍 긋고 외우자. 우선 공자님 말씀, 출처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이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굳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어떤 말에도 곧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에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한창기의 ‘뿌리 깊은 나무’ 표지들. 나무는 나이테나 ‘큰 나무’처럼 인간 여러 이미지의 비유로 자주 활용된다.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제공
지학, 이립, 불혹, 이순, 종심 등 저 한자문장 속 알쏭달쏭한 말들이 ‘어떤 나이’를 가리킨다는 것을 한자(지식) 없이 자란 이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교육이 그랬으니 그들 책임은 아니다.

그 말을 구성하는 문자 각각의 주머니 속의 뜻을 바탕으로 이 말들이 새로운 뜻을 지닌 말로 변신 또는 진화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실망을 좀 덜 수 있으리.

◆ 10대 : 유충 지학 과년 어린아이 시절을 지난 10세 전후 나이는 유충(幼沖)이다. 사극에서 가끔 나오는 ‘세자께서 아직 유충이시니…’ 하는 대사(臺詞)로 이 말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겠다. 드라마도 말 뜻 알고 보면 더 재밌다.

(공자가) 학문(學) 즉 공부에 뜻(志)을 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선 그 나이 15세가 지학(志學)이다. 공부 생각이 없는 어린 자녀들을 애달프게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일까? 이 대목에서 여러 엄마들 마음 복잡하겠다.

‘과년한 딸’이라는 말 때문에 중년 친구들이 쌈박질 벌였다는 얘기 예전에 들었다. 과년(瓜年) 즉 시집가기 좋은 나이란 말을 노처녀 과년(過年)으로 오해한 나머지 생긴 일이었단다. 채소인 오이의 한자 과(瓜)를 분해하면 대충 여덟 팔(八)자 2개라는 다소 우스꽝스런 생각이 만든 나이의 이름이다. 8 더하기 8은 16, 춘향이나 줄리엣 시집간 나이 이팔청춘일세.

◆ 20세 : 약관 방년 남자 20세는 갓(冠) 쓰는 나이 약관(弱冠)이다.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 10세를 배우기 시작하는 유(幼), 20세 약(弱), 집을 가지는 즉 장가가는 30세 장(壯), 벼슬을 하는 40세 강(强) 등으로 적은 데서 온 말이다. 여자 20세는 꽃 같은 나이 방년(芳年)이다. 성년(成年)을 가리키는 개념인데, 과거 사회 남녀 차별(差別)의 한 모습이겠다.

◆ 30세 : 이립 30세를 이르는 이립(而立)은 (홀로) 선다(立)는 의미다. 마음 학문 가정 경제 등 여러 면에서 홀로 선다는 것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서정윤의 나른하고 달콤한 시(詩) ‘홀로서기’도 있지만, ‘오늘날 한국의 30세 무렵들’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아픔 느낀다. 힘내자, 청년들아.

◆ 40세 : 불혹 불혹(不惑), 미혹(迷惑)에 빠지지 않는단다. 유혹에 휘말려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님 잘났어, 정말 별꼴이야!” 말이 나올 만큼 요즘 사는 모습들과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공감하지 않더라도, 혹 시험문제로 보게 된다면 ‘불혹은 40세를 이르는 말’이라고 진술할 것, 일종의 용어니까.

◆ 50세 : 지천명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은 50세다. 사전은 타고난 운명, 하늘의 명령 등 비교적 간단한 언어로 새기고 말지만 종교 윤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천명’은 그리 만만할 수 없다. 그 중 유가(儒家)의 천명으로 이 말을 이해하는 것이 처음 이 말을 50세의 대용(代用) 언어로 퍼뜨린 공자와의 인연에 적합하겠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는 말처럼 천명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고, 결국 하늘의 뜻으로 세상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 말을 운명(運命)이나 섭리(攝理)와도 같은 뜻으로 알았을 것이다.

하늘에 따른다는 이 뜻은 중국 대륙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 여러 나라들의 정치이념으로도 오래 기능했다.

‘하늘의 명령’에 따라 권한이 주어진 전제적 제왕(帝王)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치사상의 핵심이 바로 천명이었던 것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하(下)편으로 계속>


■ 사족(蛇足)

해 년(年)의 갑골문 (이락 ‘한자정해’ 삽화 인용)
나이의 한자어 연령(年齡)은 한자의 본디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글자들이다. 거북 배딱지나 소 어깨뼈에 새겨졌던 갑골문(甲骨文)은 3500년 전 황하(黃河) 유역 은나라 사람들의 ‘그림 작품’이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점을 치기 위한 도구로 그림을 그렸다. 해 년(年)자는 수확한 벼를 지고 가는 사람 모습 갑골문에서 변해온 것이다. 오랜 변천(變遷)의 과정을 함께 보면 이해도 쉽거니와 경이롭다. 처음에는 수확의 기쁨이나 더 많은 식량의 기원을 그린 그림이었을 터다. 해마다 그 수확이 이어지니 오늘날 해 년(年)의 뜻이 됐다. 시 읽듯 그림 보면 그 뜻이 보인다.

령(齡)은 이빨 치(齒)를 뜻 요소로, 령(令)을 소리요소로 합친 글자다. 소리(성聲)는 ‘령’이되 그 의미(형形)는 ‘이빨’인 것이다. 동물 나이는 이빨로 쟀다. 그래서 나이의 뜻이 된 것이겠다. 齡의 바탕인 치(齒)는 원래 이빨 그림이다. 그 그림에 옛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소리 요소인 지(止)를 붙여 완성한 글자가 치(齒)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동양 문명의 그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른다. 뜻글자이기 이전에 재미난 그림인 것이다. 웹툰처럼, 그 그림과 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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