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에 착수한 의사들은 뜻밖의 행동에서 해답을 찾는다. 삶을 즐기는 그들 특유의 생활방식이었다. 주민들은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다. 마을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았다. 친밀한 사회적 유대가 건강과 장수를 지켜준 셈이다. 이처럼 공동체적 요인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로제토 효과’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로제토의 기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황금만능주의가 마을에 침투하면서 공동체 문화가 붕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한 기여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됐다. 주민들의 심장병 사망률은 점차 상승해 1970년에는 1940년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로제토의 비극은 오늘 이 땅에서 재연되고 있다. 어제 우리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질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그쳤다.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72%만 그렇다고 응답해 꼴찌를 기록했다. 가족 간의 대화도 끊어졌다.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공부를 도와주는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한국 전통사회의 모습은 로제토 마을의 옛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인의 DNA에는 ‘나’보다 ‘우리’를 앞세우는 공동체정신이 녹아 있었다. 자기 부모를 지칭하면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고 부르는 민족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그런 위대한 정신이 사라지면서 삶의 질이 심장병에 걸린 듯 휘청거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삶의 질은 ‘한강의 기적’처럼 압축성장으로는 좋아지지 않는다. 공동체 구성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로제토 기적에는 니스코라는 의인이 있었다. 그는 주민들에게 씨앗을 나눠 주고는 꽃을 예쁘게 키우면 상을 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정신이다. 공동체도 물을 주어야 꽃이 핀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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