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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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물리학적 기법으로 세상물정 소재들 분석
‘한국의 성씨’ 지난 500년간 변화없는 이유 등
자연과학·인문학 통섭과 융합 통해 소통 시도
김범준 지음/동아시아/1만4000원
세상물정의 물리학/김범준 지음/동아시아/1만4000원


‘세상물정의 물리학’은 독자가 통계물리학에 쉽게 접근하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이를 통해 융합과 통섭(consilience)을 추구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도록 유도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정치에 대입해본다.

잣대없는 연결망의 대표사례인 인터넷 구조. 밝은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연결선이 많은 노드다.
동아시아 제공
“대동소이한 사람들을 임의의 기준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눈다. 이어 집단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다른 집단과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우월하다는 믿음과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자발적으로 발현시킨다. 지역감정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그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를 바라는 정치인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 국민통합을 방해하는 자들은 평범한 우리가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차이를 또 다른 우리와 구별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이용해 손쉽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리고 여전히 챙기는) ‘그들’이다.”

개미도 알 수 있는 효율적인 길을 인간만 모른다? 저자가 책에 쓴 사례를 보자. “개미의 길찾기를 연구해보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얻는다. 개미들은 길을 갈 때 따라가기와 돌아다니기를 절묘하게 섞어놓았다. 나름 생존하는 방법이다. 개미의 길 찾기는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만약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한 사람이 정한 길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길이 목표에 도달하는 최적의 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수많은 개미가 무작정 따라걷다 모두 죽게 되는 그런 길이라면 어쩌겠는가. 반대로 대다수가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또 어떻게 될까.(개미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집단지성을 성공적으로 발현하려면 당연히 따라가기와 돌아다니기 둘 다가 필요한데도 그렇다. 안타깝다.“

저자는 지난 500년간 족보 통계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았다. 10개의 족보 성씨를 전산화하니 그 분포를 나타내는 그래프의 함수꼴은 50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우리의 성씨 분포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성씨는 불과 300개 정도이다. 이웃 일본에 13만여개 성씨가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놀라운 동질성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어째서 한국의 성씨는 이렇게 적게 유지가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우리 관용 표현에 그 답이 숨어 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면 성을 갈겠다’는 표현이 함축하듯 사실상 우리의 통념에선 성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세상물정의 소재들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내고 사회적 의미를 던진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지식의 통합), 융합이라는 유행어가 학계와 사회를 뜨겁게 달군 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태껏 그것을 물리학도 알고 사회학도 알고 철학과 문학까지 한 인물이 다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융합, 통섭은 방법론의 나열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사회학적 고민과 물리학·통계학적 철학과 방법론이 만났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평에서 “융합은 분과 학문의 제도가 만들어내는 전문가 바보들을 구원하기 위한 긴급처방”이라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 @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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